파리협정 탈퇴는 트럼프의 이른바 ‘아메리카 퍼스트’, 즉 미국 우선주의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이다. 지구가 멸망하든 말든 미국은 예전처럼 펑펑 쓰면서 살겠다는 말이다. 왜 우리의 보수에겐 ‘코리아 퍼스트’가 없을까? 한국에서는 코리아 퍼스트를 외치는 것이 보수가 아닌 진보로 인식되었다. 통상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보수에 가깝다. 사진은 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경포 해변에서 태극기를 든 해맞이객이 경자년(庚子年) 새해 첫 해돋이를 맞이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연말 과학전문지 ‘네이처’에서 올해 과학계를 전망하며 제시한 주제어 중에 미국 대선이 포함돼 있다. 다들 예상했겠지만 트럼프 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세계 기후변화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미 2017년 6월 1일 파리협약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파리협약은 2016년 11월 4일 발효된 이후 3년까지는 탈퇴할 수 없게 돼 있다. 공식 탈퇴 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 첫날인 지난해 11월 4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 절차 개시를 선언했다. 완전한 탈퇴까지는 다시 1년이 더 걸린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11월 4일 미국은 파리협정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한다. 이날은 미 대선 바로 다음 날이다.

파리협정 탈퇴는 트럼프의 이른바 ‘아메리카 퍼스트’, 즉 미국 우선주의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이다. 지구가 멸망하든 말든 미국은 예전처럼 펑펑 쓰면서 살겠다는 말이다.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말하는 것은 이 노선에 대한 찬반을 떠나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할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트럼프 자신이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미국 다음으로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대한민국이 돋보인다. 당장 광화문에 나가 보면 ‘태극기 부대’의 상당수는 성조기를 들고 있다. 유력 일간지들은 방위비 분담금을 갑자기 다섯 배 올려 달라는 미국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라고 종용한다. 가장 한국적인 이름을 가진 신문사가 오랜 세월 가장 앞장서서 미국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일본과의 갈등이 생길 때면 아직도 일본 편에서 국민들에 훈계한다. 이분들에게 대한민국은 3순위에 불과하다. 한국 보수의 비극은 여기서 비롯된다. 왜 우리의 보수엔 ‘코리아 퍼스트’가 없을까?

한미동맹은 물론 중요하다. 동네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과 이왕이면 잘 지내는 게 현명한 처사이다. 그러나 모든 동맹의 궁극적인 목적은 동맹 자체가 아니고 국익이다. 국익에 우선하는 동맹은 없다.

국가와 공동체를 개인보다 우선에 두는 건 보수의 오래된 가치이다. 공동체 우선이 자신을 향할 때는 미덕이 된다.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면서까지 국가에 충성하고 봉사하는 품행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공동체 우선이 자신보다 바깥을 향하면 비극이 시작된다. 지독한 전체주의나 국가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친다. 역설적이게도 공동체 우선을 강요하는 지도자들은 대개 자기 자신을 공동체보다 우위에 두고 권력을 휘두른다. 코리아 퍼스트가 아니라 “내가 먼저”인 셈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한국 사회를 주름잡았던 독재자들이 한결같이 이 길을 걸었다. 내가 먼저, 미국은 두 번째, 일본은 세 번째, 한국은 네 번째, 국민은 맨 나중, 아마 이런 서열이지 않았을까.

그런 까닭에 한국에서는 코리아 퍼스트를 외치는 것이 보수가 아닌 진보로 인식되었다. 통상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보수에 가깝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사람이 먼저’, 즉 ‘휴먼 퍼스트’가 진보적 색채를 더할 뿐이다.

총선을 석 달 앞두고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이 보수대통합 논의를 시작한다고 한다. 통합논의의 중요한 키워드는 혁신이다. 그러나 보수혁신의 이면에는 정권을 되찾기 위한 ‘반 문재인’ 정서라는 정치공학상의 교집합만 아른거린다. 정말로 한국의 보수가 혁신을 거듭해 보수의 이름을 되찾고 싶다면 가장 먼저 내세워야 할 기치는 코리아 퍼스트이다. ‘태극기 부대’에서 성조기부터 내려야 한다. 미국 우선주의, 일본 우선주의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독재자를 찬양하든 탄핵당한 대통령을 그리워하든 재벌 편만 들든 그게 진짜 보수의 출발점이다. 정당도 언론도 간판에 국호가 붙었으면 최소한 그 이름값은 해야 하지 않겠나.

진보에도 혁신이 필요하긴 마찬가지이다. 혁신 없는 진보는 죽은 진보이다. 진보가 혁신을 선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진보의 걸림돌이 된다면 얼마나 우스운 상황인가.

지금까지 진보정치가 추구한 대표적인 노선은 노동 우선주의, 말하자면 ‘레이버 퍼스트’였다. 과거 민주노동당이나 지금의 정의당이 그렇다. 레이버 퍼스트는 자본에 대비된 노동을 강조하는 노선으로 자본주의적 계급 대립을 한국 사회의 기본모순으로 파악하는 진보정당의 철학이 반영돼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많은 이슈들은 자본과 노동의 직접적인 대립관계로만 치환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치정당으로서의 진보정당이 외연을 확대하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즉, 진보의 21세기적인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바뀐 선거제도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의 미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혁신의 그 길에 과학이 하나의 큰 자리를 차지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코리아 퍼스트이든 휴먼 퍼스트이든 과학이 적어도 세 번째 자리는 차지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보수가 보수다워지고 진보가 진보다워지기 위해서조차 과학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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