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무렵의 암컷 사자 엘자와 조이 애덤슨. 위키피디아

조이 애덤슨(Joy Adamson, 1910.1.20~1980.1.3)은 논픽션 ‘야성의 엘자(Born Free(1960)’로 유명한 야생동물 보호 활동가 겸 작가다.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피아노와 약학을 전공한 그가 아프리카의 야생동물, 특히 사자와 표범 같은 맹수들과 인연을 맺게 된 데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남편 영향이 컸다.

첫 남편과 이혼한 직후인 1937년 그는 케냐를 여행하면서 스위스 출신 식물학자 겸 유명한 식물 세밀화가 피터 발리(Peter Bally, 1895~1980)를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한때 조각을 공부한 적이 있는 애덤슨은 발리에게서 그림을 배우며 야생 동식물의 생태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1940년 대 초 사파리 여행 도중 자연공원 관리인 겸 불법수렵 감시인 조지 애덤슨(1906~1989)을 만나 1944년 결혼했다.

1956년 조지는 순찰 도중 관리인들에게 달려들던 암사자 한 마리를 총으로 사살했다. 그는 현장에서 새끼 세 마리를 발견하고, 어미가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난폭하게 행동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젖도 덜 뗀 새끼들을 데려와 조이와 함께 집에서 보살폈다. 새끼들의 덩치가 커지면서 두 마리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동물원으로 보냈고, 가장 작은 암컷 엘자도 사냥 등 야생 적응 훈련을 시킨 뒤 케냐의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책은 조이의 이름으로 출간됐지만, 엘자와의 우정은 부부 모두의 것이었고, 특히 남편 조지는 ‘사자들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초대형 고양이과 맹수들과 잘 통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엘자의 어미를 죽인 일에 대한 죄의식 탓이었는지, 엘자와의 우정을 표나게 과시하지 못했다.

부부는 1970년 이혼한 뒤 아프리카 동물들을 위한 각자의 삶을 살았다. 조이는 엘자가 새끼를 데리고 자랑하듯 자신을 다시 찾아온 이야기, 엘자가 1961년 기생충 질환으로 숨진 뒤 그의 새끼 세 마리를 거두어 세렝게티 자연공원에 살게 한 이야기 등을 ’Living Free’ ‘Forever Free’ 등 일련의 책으로 출간했고, 조지도 자서전 ‘A Lifetime with Lions(1968)’와 ‘My Pride and Joy’(1987)을 썼다.

조이는 해고에 앙심을 품은 자신의 전 요리사에 의해, 조지는 한 유럽 관광객을 구조하러 갔다가 소말리아 밀렵꾼에 의해 각각 살해 당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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