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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는 초진환자 많이 보내주세요”… ‘협력병원’ 현판 찍어내는 대형병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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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는 초진환자 많이 보내주세요”… ‘협력병원’ 현판 찍어내는 대형병원들

입력
2020.01.14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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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효율ㆍ안정성 위해 도입 불구 마케팅 수단으로 마구잡이 남발

개원가가 밀집한 지역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개원가가 밀집한 지역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학병원, 검사ㆍ수술 등 가능한 초진환자 잡기 혈안

환자 보내면 찾아와 “협력병원 맺자.”… 협력병원 현판만 난무

진료의뢰 많은 의사 ‘VIP’건강검진권 제공 등 본래 취지 타락

“대형병원과 협력하고 있다는 게 안심이 되죠. ‘협력병원’이라는 명패만으로도 이곳 원장이 큰 병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 같아 신뢰도 가고요.”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이비인후과 의원에서 만난 최모(45)씨의 이야기다. 그의 말처럼 이 의원에는 서울 강남구, 서초구에 위치한 3차 의료기관과 원장이 졸업한 의대 부속병원이 제공한 ‘협력병원(의원)’ 현판이 걸려 있다. 상급종합병원 등 2, 3차 의료기관이 의원 등 1, 2차 의료기관 환자의 편의를 위해 진료 의뢰 등 협력 관계를 제공하는 의료전달체계를 뜻하는 협력병원 제도. 당초 효율적이고 안전한 진료와 치료를 위해 운영되는 이 협력병원 제도는 과연 최씨의 믿음처럼 환자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환자의 편의와 진료를 제고하는 도구라기보다 대형병원들의 마케팅, 다시 말해 돈벌이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협력병원을 통해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대형병원들이 별다른 관리 없이 마구잡이로 ‘협력병원’ 명패를 찍어내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 한국일보]협력병원. 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협력병원. 신동준 기자

◇ ‘돈’ 되는 초진 환자 유치 수단

의료계에서는 대학병원(2, 3차 의료기관)의 초진 환자 유치 경쟁이 협력병원 사업을 마케팅 수단으로 변질시킨 주범이라고 지목한다. 서울의 모 대학병원 교수는 “대학병원은 재진 환자보다 초진 환자가 많아야 검사, 진료, 수술 등을 통해 진료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라며 “협력기관으로 지정해준 1차 의료기관들이 검사와 수술이 필요한 중증질환 의심 초진 환자를 우리 병원으로 보내줄수록 수익이 커지기 때문에 (협력병원이라는) 제도로 1차 의료기관들을 관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고 털어놨다.

서울 강남구에서 1차 의료기관인 여성의원을 운영하는 산부인과 전문의 A씨는 대형병원들이 앞다퉈 협력병원 체결을 요구할 정도라고 말한다. 그는 “개원 후 유방암과 자궁암이 의심되는 환자를 서울의 각 대학병원에 의뢰했더니 3~5개 대학병원 관계자가 찾아와 협력병원 체결을 요청했다”라며 “한 병원은 구두로 승낙했더니 며칠 후 바로 협력병원 현판을 보냈을 정도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병원에 1회 이상 환자를 의뢰한 1차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협력병원 체결을 유도하고 있다”며 “서울의 2, 3차 병원의 경우 각각 협력병원 수가 1,000~ 3,000개에 달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협력병원 체결은 하지 않았어도 대형병원의 진료협력 네트워크 안에 포함된 1, 2차 의료기관이 6,000~1만개 이상”이라고 덧붙였다.

원활한 초진 환자 공급을 원하는 대형병원들의 마케팅 요구에 따라 협력병원 수는 급증하고 있지만 협력병원 체결 및 관리는 허술하다. 병상규모, 전문의 수 등 체결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협력병원 체결에 나서는 대학병원들이 적지 않다. 모 대학병원 관계자는 “(협력병원) 기준이 법에 규정돼 있느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보건복지부의 ‘상급종합병원 지정 및 평가에 대한 지침’(정보협력체계 구축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을 받기 위해서는 병‧의원과의 진료협력 체결을 위한 절차 등 규정을 마련하고, 홈페이지 등에 공지를 해야 한다. 하지만 취재에 응한 대다수 상급종합병원은 진료협력 체결을 위한 절차 등 규정 여부조차 확인해주지 못했다. 또 다른 서울의 대학병원 관계자는 “협력병원이 워낙 많아 관리자체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내과를 운영하고 있는 전문의 B씨는 “1년에 1회 정도 ‘협력병원의 날’이라고 해 협력병원 원장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데 귀찮기도 하고 의뢰실적이 적어 불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 많이 보내면 VIP건강검진권 제공

대학병원들이 진료건수를 올리기 위해 상품과 인센티브 등을 걸고 협력병원들의 경쟁을 부추긴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재활의학과 전문의 C씨는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진료 의뢰 실적에 따라 등급을 매겨 환자를 많이 보낸 원장들에게 ‘VIP 건강검진권’을 제공하기도 했다”며 “말이 협력병원이지 악어와 악어새와 같은 공생관계가 이어지고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협력병원 시스템에 따라 환자가 대학병원으로 옮겨지면 자연스럽게 동네병원과 같은 1, 2차 병ㆍ의원의 수익이 줄게 된다. 대학병원으로 이동한 환자들이 다시 병·의원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당국은 대형병원에서 작은 병원으로 환자를 ‘회송’하는 경우 수가를 더 쳐주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지난해 ‘회송수가 시범사업’을 통해 상급종합병원에서 외래 치료를 받은 환자 720만 명 중 1차 병원으로 회송된 환자 건수는 17만3,000건으로 전체 외래 환자의 2.4%에 불과했다. 협력병원 시스템의 ‘단물’은 대형병원만이 주로 챙기는 상황인 셈이다. 서울 강남구에서 가정의학과를 운영하고 있는 전문의 D씨는 “솔직히 아무리 열심히 진료의뢰서를 써서 보내도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회송되는 환자가 거의 없다”며 “병원 대기실에 걸려 있는 현판 말고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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