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만들어내면서 고유하게 생기는 권리를 ‘저작권’이라고 하고, 작가에게 그것은 생계와 자신의 존엄 그리고 이후의 노동을 반복할 수 있는 힘이다. ©게티이미지뱅크

10대 때 책을 사들인 사람은 내가 아니라 언니였다. 언니는 나보다 먼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여윳돈이 생기자 월마다 오는 문예지도 정기 구독했다. 골방에 숨어서 돋보기로 흰 종이를 태워보는,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 무력하게 병 들어가는 한 소설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도 그즈음일 것이다. 그의 이름을 단 상으로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이 호명되는 것을 지켜보며 흘러갔던 1990년대와 2000년대. 그런데 2020년대가 열리자마자 나는 그 상의 운영자 측에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수상의 수상 조건으로 해당 단편의 저작권을 3년간 양도하라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룻밤 동안 게재 거부를 세상에 알려야 할까 고민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함께 상을 받은 작가들이었다. 그들도 나처럼 책장에 꽂혀 있는 수상집들을 읽으며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 문학의 ‘천재적인’ 모더니스트 이상의 이름으로 자기가 한 작업이 격려받는다는 기대는 공통된 것이었을 테니까.

작가가 되기 전 출판 노동자로 일했던 나는 당연히 팔려야 하는 상품이지만 또 무조건 팔리기만 하면 그만이 아닌 출판의 이중적인 조건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의미도 있고 내용도 좋아서 성심성의껏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일주일 겨우 매대에서 버티다가 사라져 버리는 신간들을 편집자로서 힘들게 지켜봤다. 그래도 그 책이 세상으로 나가 일으켰을 지금 당장은 추측할 수 없는 영향력, 일렁임 같은 것을 상상해 보면 다음 책을 만들기 위해 다시 노동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만들어내면서 고유하게 생기는 권리를 ‘저작권’이라고 하고, 작가에게 그것은 생계와 자신의 존엄 그리고 이후의 노동을 반복할 수 있는 힘이다. 해당 출판사가 언급했듯 오해와 소통의 부족, 통상적이고, 직원의 실수 등으로 양도를 요구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그것은 정말 그렇게 하지는 않을 테지만 통상적으로 집 문서를 내게 넘겨야 하고 내가 너를 그 집에서 내보낼 생각은 없고 그 집을 다른 목적으로 타인에게 임대하거나 팔 수도 있기는 하지만 여태껏 그런 적은 없으니까 소유자 이름을 내 앞으로 해 달라는 요구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면 그런 계약을 요구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몇 명의 작가가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혹시 어떤 ‘자세’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위력을 행사해 관철시키는 과정이 상의 권위라고 착각했던 것은 아닌가.

언니가 사들고 온 그 많은 책과 수상작품집을 받아 읽으며 작가가 된 나는 마감들을 되도록 성실히 지켜 나가며 저작 노동으로 생활한다. 출산으로 경력이 끊긴 언니는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가 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조건의 일자리들을 옮겨가며 분투 중이다.

내 가장 가까운 또 다른 가족은 건물 청소 노동자로 이태를 일했다. 일을 시작할 때 ‘고참’들이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몸을 아끼라고 충고할 정도로 의욕적이었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반짝반짝 윤이 나고 깨끗해진 자신의 구역을 보면 기분이 좋고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고 했다. 무심하게 사람들이 손때를 입히고 쓰레기를 버리면 “썽”이 난다고.

소설에서 이상이 날자, 날아 보자고 한 마지막 대목은 일종의 갱신이었을까, 무참한 패배였을까. 나는 이 일이 있고 나서 어려서부터 했던 그 의문을 다시 떠올렸다. 그것은 마치 예상치 못한 혼란이 지나고 난 뒤 지금의 나처럼 환멸과 분노, 기대와 희망이 뒤섞인 ‘정오’의 ‘환란’ 같은 상태였겠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은 아침부터 내내 닦아놓은 층계참을 바라보는 내 가족의 자부에서 노동의 자세를 배운다.

김금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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