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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곤의 폭로’로 조명 받는 日 형사사법제도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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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곤의 폭로’로 조명 받는 日 형사사법제도의 문제점

입력
2020.01.13 07:00
수정
2020.01.13 11:0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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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곤 전 닛산ㆍ르노자동차 회장이 8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일본 도주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일본 형사사법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베이루트=로이터 연합뉴스
카를로스 곤 전 닛산ㆍ르노자동차 회장이 8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일본 도주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일본 형사사법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베이루트=로이터 연합뉴스

카를로스 곤 전 닛산ㆍ르노자동차 회장의 헐리우드 영화에 버금가는 도주극과 기자회견으로 일본 형사사법제도가 주목 받고 있다. 지난 8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전세계 60개 언론사를 초청해 기자회견을 연 이후 유력 언론들과 개별 인터뷰를 통해 일본의 낡은 사법관행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법무장관이 이례적으로 하루에 두 번 곤 전 회장의 주장을 반박하는 회견을 열었고, 이를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해 해외 언론에 뿌린 이유다. 일본 정부와 다수 언론에선 곤 전 회장이 ‘불법 도주자’일 뿐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인 반면, 해외에선 그가 일본을 도주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으로 일본의 후진적인 사법 관행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다. 더욱이 자국 이미지 손상을 막기 위해 서둘러 대응에 나선 법무장관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나는 발언으로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도쿄 시내 대형 전광판에서 카를로스 곤 전 닛산ㆍ르노자동차 회장의 기자회견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 것을 배경으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9일 도쿄 시내 대형 전광판에서 카를로스 곤 전 닛산ㆍ르노자동차 회장의 기자회견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 것을 배경으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변호인 입회 금지와 인질사법 관행

곤 전 회장은 8일 도주 후 첫 기자회견에서 “일본 검찰은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나를 압박했다”며 “변호인 입회 없이 하루 8시간 이상 조사를 통해 자백을 강요 받았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변호인이 없는 상태에서 반복된 질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검찰 관행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변호인 입회 금지는 선진국 중에는 일본 정도에서만 이어지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한국 등에서는 허용된다. 유엔 고문금지위원회는 2013년 이 같은 일본의 수사관행을 ‘중세의 흔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우편요금 비리 사건으로 체포됐다 무죄를 선고 받은 무라키 아츠코(村木厚子) 전 후생노동성 차관(판결 당시는 국장)은 검찰 조사에 대해 “링에 아마추어 권투선수(피의자)와 프로 권투선수(검찰)가 올라 심판도 코치도 없는 상태”라고 표현했다.

또 일본의 경우엔 체포한 용의자에 대해 최장 23일까지 구금할 수 있다. 그러나 구금 연장을 위해 별건 수사가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곤 전 회장도 체포 당시 2010~2014년 소득을 축소 신고한 혐의를 받았으나 이후 2015~2017년 소득 축소 신고ㆍ특수배임 혐의가 추가되면서 107일 간 구금이 이어져 서양 등에서 ‘인질사법’이란 비판을 받았다.

모리 마사코 일본 법무장관이 9일 오전 법무성에서 카를로스 곤 전 닛산ㆍ르노자동차 회장의 회견을 내용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모리 마사코 일본 법무장관이 9일 오전 법무성에서 카를로스 곤 전 닛산ㆍ르노자동차 회장의 회견을 내용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유죄율 99%’ 日 검찰의 신화

곤 전 회장은 8일 회견에서 일본 검찰의 유죄율을 99.4%라고 거론하며 사실상 일본 법정에서 무죄를 기대할 수 없어 도주했다고 주장했다.

모리 마사코(森雅子) 일본 법무장관은 9일 기자회견에서 이에 “일본 검찰은 정확한 증거에 따라 유죄 판결 전망이 높을 때에만 기소한다”고 반박했다. 일본에서는 이를 ‘정밀사법’이라고 칭하는데, 장기 구속과 자백 강요 등 무리한 방법으로 99.4%에 달하는 유죄율을 이끌어낸다는 곤 전 회장의 주장을 겨냥한 것이다.

곤 전 회장은 12일자 아사히(朝日)신문 인터뷰에서도 “처음부터 (기소된다면) 유죄라는 것”이라며 “일본 검사는 ‘당신이 유죄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 99.4%(의 유죄율)가 자랑스럽다’라고 하는 생각이다”라고 비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에선 2009년 기준 1심의 유죄율이 99.9%인데 반해, 유럽은 무죄율이 10%가 넘기도 한다. 영국은 2009년 형사법원 기준 82%, 프랑스는 2008년 93.6%로 다소 차이가 있었다.

카를로스 곤 전 닛산ㆍ르노자동차 회장이 8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한 취재진에 답변하고 있다. 베이루트=AFP 연합뉴스
카를로스 곤 전 닛산ㆍ르노자동차 회장이 8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한 취재진에 답변하고 있다. 베이루트=AFP 연합뉴스

흔들리는 ‘무죄 추정의 원칙’

이처럼 높은 유죄율을 기록한 나라일수록 ‘무죄 추정의 원칙’은 흔들리기 쉽다. 곤 전 회장은 8일 회견에서 “일본 검찰이 유죄를 전제하고 자백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일본 사법당국 수장인 모리 장관의 9일 새벽 기자회견이다. 그는 곤 전 회장이 일본의 형사사법제도를 강하게 비판한 것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려 한다면 (일본) 사법의 장에서 정정당당하게 무죄를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형사 재판에서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고, 피고가 무죄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당연한 원칙을 망각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많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누구나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근대법의 기본 원칙 중 하나다. 일본 형사소송법에도 “피고 사건이 죄가 되지 않는 때 또는 피고 사건에 관하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는 판결로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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