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화마가 휩쓸고 간 호주 산불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야생동물들이 구조대원 또는 주민들에 의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지난 5일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자 ‘야생동물의 보고’인 캥거루섬에서 코알라 수십 마리가 구조돼 야생동물 공원에서 수의사와 자원봉사자들의 간호를 받고 있다. 발과 다리를 비롯해 몸통 곳곳에 화상을 입은 코알라들은 정성스런 치료 덕분에 회복 중이지만 상처에 붕대를 감은 채 나무 위에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10일 사우스웨일스주 에덴 인근 마을에서는 불길에 쫓겨 피신한 토끼가 아이들이 발견됐고, 같은 날 빅토리아주 말라쿠타의 긴급 보호소에선 산불로 어미를 잃은 새끼 캥거루가 발견돼 보살핌을 받고 있다. 11일 부상을 입은 앵무새 한 마리가 잿더미로 변한 코시우스코 국립 공원을 배회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시작돼 다섯 달째 이어지고 있는 호주 산불은 이미 남한 면적보다 넓은 1,200만㏊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코알라와 캥거루 등 야생동물 10억마리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특히, 캥거루 섬에서만 코알라 2만5,000여 마리가 목숨을 잃었는데, 코알라는 동작이 느려 화재와 같은 재난이 닥칠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드니대학교 관계자는 “산불이 인간뿐 아니라 야생동식물의 미래에도 영향을 끼친다”면서 “코알라나 캥거루처럼 잘 알려진 종들만 위험에 처한 게 아니라 생태계의 수분 및 영양분 순환 역할을 맡고 있는 곤충들까지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