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의 탄생, 대치동 리포트] <5>대학 안 간 청년은 유령? 
 평균월급 288만원, 대졸의 65%… 임금격차 10년째 그대로 
서울시 특성화고 신입생 모집 현황. 그래픽=김대훈 기자

“저는 평생 사원이래요. 그 흔한 주임, 대리도 못 된대요.”

상업 계열 특성화고를 졸업한 이상화(가명ㆍ20)씨는 지난해 4월 서울 소재 제약회사에 입사했다.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회사라 부푼 마음을 안고 출근했지만, 이씨가 현실의 높은 벽을 느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옆 부서에 10년 근속한 고졸 선배 직책이 그냥 사원이었어요. 그래서 인사팀에 ‘고졸 출신은 승진 기회가 없느냐’고 물어봤는데, ‘없다’고 잘라 말하더라고요.”

그는 첫 월급을 받은 후 한 번 더 좌절했다. 임금명세서에 세전(稅前) 174만원이 찍혔다. 6개월간 이 금액이 이어지고 이후 조금씩 올라가는 구조였다. 이씨는 “2년차까지 최대로 받을 수 있는 월급이 250만원이에요. 그마저도 대졸 신입과 비교하면 매달 60만원 정도 차이가 나더라고요. 아무리 노력해도 진급할 수 없고, 임금은 대졸 출신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 ‘무조건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말이 실감나더라고요.”

이씨의 사례처럼 한국 사회에서 고졸 출신 직장인들은 “미래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는 특성화고 출신 직장인들마저도 진급에 상한선이 정해진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졸 직장인과의 임금 격차는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고질적 문제 탓에 ‘그나마 괜찮다는’ 특성화고 출신 직장인조차 대학 진학으로 눈을 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부는 학벌 중심 사회의 폐단을 없애기 위한 방편으로 직업계 고등학교를 육성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현실은 딴판이다. 직장을 잡고 현실을 마주할수록 오히려 학벌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명문대 진학을 위한 비정상적 교육이 서울 대치동에서 판을 치고 있는 이면에는, 고졸 출신들의 이러한 설움이 기저에 깔려 있는 셈이다.

고졸 출신 직장인들은 “모든 문제는 저임금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디자인업체에서 2년째 일하고 있는 김상협(가명ㆍ25)씨는 “월급이 150만원에 불과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 미래를 위한 투자는 꿈도 못 꾼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시 청년허브 등이 연구한 ‘대학 비진학 청년 현황 및 심층면접조사’에 따르면 고졸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저임금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첫 일자리에서 100만~150만원을 받은 고졸 직장인은 전체 응답자 1,058명 중 376명(35.5%)에 달했고, 최저 생계비 수준인 월급 100만원 미만을 받은 이들도 275명(26.0%)이나 됐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고졸과 대졸 간 임금 격차도 고졸 출신들을 낙담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5인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고졸 직장인의 월평균 임금은 288만원으로, 대졸 직장인이 받는 444만원의 64.8%에 그쳤다. 이 같은 비율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일 정도로 고착화된 상황이다. 영상미디어 특성화고를 전공한 한동욱(가명ㆍ21)씨는 “대졸 출신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심지어 고졸 출신이란 이유로 잡무까지 처리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급여가 차이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지켜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의 임금 격차는 향후 진급과 임금상승 등 미래 관점에서도 고졸 출신을 더욱 뒤처지게 만든다. 한씨는 “대졸 출신들이 퇴근 후 업무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이나 어학을 배울 때 상대적으로 월급이 적은 고졸 출신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추가근무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운 좋게 승진 기회가 와도 자기 개발이 안 돼 있어 대졸 출신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가 발간한 ‘고졸 청년 근로빈곤층 사례 연구를 통한 정책대안 보고서’에도 이 같은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2017년 기준 주40시간 초과근무자의 비중은 고졸 직장인이 54.1%로 대졸 직장인(37.7%)보다 훨씬 높았다.

경쟁에서 밀린 고졸 직장인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잦은 이직을 경험한다. 서울시 청년허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회 이상 취업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고졸 직장인 비율은 27.5%로, 대졸 출신(4.4%)에 비해 6배 이상 높았다. 3회 이상 이직한 고졸 직장인 비율 역시 20.7%로 대졸 출신(10.4%)의 두 배였다.

잦은 이직은 다시 낮은 임금상승률로 이어진다. 5년간 11번의 이직을 경험했다는 박우연(가명ㆍ25)씨는 “기존 직장과 업무 연관성이 낮거나 같은 직종이라도 근속연수를 100% 인정해주지 않아 임금상승률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고용부 조사에 따르면 고졸 직장인의 월급상승폭은 10년 전인 2009년(월 227만원)과 비교해 60만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대졸 직장인의 임금 상승폭(349만원→444만원)의 60% 수준이다.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하다 보니 고졸 직장인들은 돌고 돌아 결국 대학 진학에 도전한다. 직장에서 3년 이상 근무하면 지원할 수 있는 특성화고졸 재직자 대입전형의 경쟁률은 2020학년도 기준으로 10대 1을 넘기도 했다. 금융회사에서 일하며 일주일에 4일 야간대학을 다니는 박하영(가명ㆍ26)씨는 “고졸 입사동기 40명 중 25명이나 야간대학을 다니고 있을 정도”라며 “그나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 생활비 부담이 적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에서 자발적으로 해결책을 내놓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모여 설립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 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의 이은아 위원장은 “저임금→장기간 근로→경쟁력 저하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근본적 대책은 결국 정부가 직접 나서 고졸 출신이 갈 만한 회사를 발굴해 사후관리하고, 관련 정보를 당사자들에게 제공하는 것뿐”이라고 밝혔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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