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 회견문 3개국어로 배포도
형사재판을 앞두고 일본을 탈출한 카를로스 곤 전 닛산ㆍ르노자동차 회장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일본의 수사ㆍ사법제도를 비판한 가운데, 일본 정부와 언론이 일제히 반박에 나섰다. 곤 회장의 주장을 방치할 경우 자국의 명예와 국익이 심대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일본 정부는 반박 회견문을 3개국어로 번역해 배포하는 등 국제 여론전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일본 사법당국 수장인 모리 마사코(森雅子) 법무장관은 이례적으로 9일 새벽과 오전에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곤 전 회장이 회견을 통해 주장한 내용을 적극 반박했다. 모리 장관은 “(곤 전 회장의 비판은) 대부분 추상적이고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 형사재판의 유죄 판결 비율이 99.4%이며, 불공정하다는 곤 전 회장 주장에 대해 “유죄 판결을 얻을 전망이 높은 경우 기소하는 제도 운용이 정착돼있다”고 반론했다. 모리 장관의 이날 회견 내용은 일본어와 영어, 불어로 작성돼 법무성 홈페이지에 게시됐다.
도쿄지검 내 서열 2인자로 꼽히는 사이토 다카히로(齊藤隆博) 차석검사도 통상보다 일주일 앞당겨 이날 정례회견을 열었다. 사이토 차석검사는 곤 전 회장이 하루 평균 4시간 미만 조사를 받았고, 일요일 외에는 하루 1시간 전후로 변호인과 접견해 조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조사 시간이 하루 8시간에 달했고 변호사 입회가 없었으며 자백을 강요당했다”는 곤 전 회장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사이토 차석검사는 짜인 각본이나 자백을 강요한 일이 없다며 조사과정이 녹화ㆍ녹음돼 있다고도 덧붙였다.
일본 주요 언론들도 일제히 정부 지원사격에 나섰다. 신문들은 곤 전 회장의 회견 내용을 비중 있게 전하며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내용이 부족하다”(아사히(朝日)신문), “사실오인”(요미우리(読売)신문), “부정행위를 둘러싼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의 부정 평가가 쏟아졌다.
일부는 이번 사안을 일본 국익과 연결 지으며 정부에 보다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 산케이(産經)신문은 곤 전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대다수 일본 언론을 배제한 점을 언급하며 “방치하면 일본의 국익에 영향을 준다. 정부 전체가 나서서 철저하게 반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온갖 수단을 써 해외를 향해 일본의 입장이나 생각을 올바르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부와 언론이 협공에 나선 현 상황부터가 ‘일본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아닌 유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곤 전 회장의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상대적으로 소수이기는 하지만 곤 전 회장의 탈출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수사 및 사법 시스템을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형사소송법 전문가인 사사쿠라 가나(笹倉香奈) 고난(甲南)대 교수는 도쿄(東京)신문에 “변호사가 피의자 조사에 입회하지 못하는 것이나 장기 구금에 대한 비판은 국내외에서 반복돼 왔다”며 “진지하게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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