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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 세대의 죄

입력
2020.01.11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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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툰베리가 지난달 11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2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 고위급회담에서 연설하고 있다. 포토아이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달 11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2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 고위급회담에서 연설하고 있다. 포토아이

누구나 30세가 되면 강제 은퇴를 하고, 35세 이상이면 의무적으로 재교육 캠프에 들어간다. 산업은 인공지능과 청소년 천재들이 도맡는다. 10대가 지배하게 된 미국이 이처럼 혁명적인 변화를 보이자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길을 걷는다. 정보기관은 해체된 뒤 ‘세대 경찰’로 탈바꿈한다. 숨어 있는 어른들을 색출하기 위해서다. 농산물 등 잉여 생산품들은 가난한 제3세계 나라들에 무상 공여된다.

1968년 미국 영화 ‘와일드 인 더 스트리트(Wild in the Streets)’의 내용이다. 히피 등 반문화 운동들이 융성하던 60년대 분위기에서 탄생한 블랙코미디지만, 최근 이 영화를 전혀 다른 맥락에서 떠올리게 되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현재의 기성세대는 10대들에게 큰 죄를 짓고 있는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그레타 툰베리가 작년 유엔 기후행동정상회담에서 ‘어떻게 우리한테 감히 이럴 수 있냐?’라고 준엄하게 꾸짖는 장면을 보고 나서다.

2003년 스웨덴에서 태어난 툰베리는 동맹휴학을 통해 기성세대의 각성을 촉구하는 청소년기후행동을 이끌어 주목을 받았으며 ‘타임’ 지에서 ‘2019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동맹휴학이 얼핏 순진하고 치기 어린 행동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나중에 그들이 어른이 되어 살아야 할 세상을 생각해보면 고분고분 학교에 앉아 있을 계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좀 비약하자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순순히 따랐다가 비극적인 희생을 당한 세월호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일 수도 있는 것이다.

20세기의 부끄러운 유산은 온실가스 대량 배출에 따른 기후변화만이 아니다. 미세먼지나 핵폐기물, 생태계 오염과 환경 파괴 등등 우리가 한 세기 내내 누린 과학기술의 과실 이면에는 숱한 골칫덩이들이 쌓여 있다. 21세기는 이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문제를 해결하느라 내내 골몰할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훗날의 역사가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그런데도 툰베리에 대해 공감하는 기성세대의 지도자들은 아직 많지 않다. 트럼프를 비롯한 몇몇 국가 정상은 조롱이나 다름없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고, 다른 이들도 대부분 경제를 모르는 이상적이고 감정적인 주장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게다가 툰베리 본인이 보여 준 실망스러운 면들을 트집 잡는 사람도 있다. 항공기 탄소 배출을 막는다며 대서양을 요트로 건넜는데 사실은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다는 사실 등등. 그러나 이건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을 문제 삼는 셈이다. 툰베리의 주장이 경제를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행복의 기준을 새롭게 모색하는 등 대안적인 가치관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 옳은 반응이다. 우리의 아들딸들이 계속 살아가야 할 세상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1976년에 나온 영화 ‘로건의 탈출(Logan’s Run)’은 한 발 더 나간 설정을 담고 있다. 23세기의 미래에 사람들은 ‘오염된 외부 세계’로부터 격리된 거대한 돔 도시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30세가 되면 누구든지 ‘승천’ 의식을 치러야 한다. 다들 낡은 육신을 버리고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냥 죽는 것이다. 돔 도시의 유토피아적인 생활은 이런 방법으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20세기 과학기술 문명이 낳은 총체적인 문제들은 결국 과학기술 그 자체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생산비와 유지비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기술 개발을 하는 적정 기술 이념의 광범위한 도입 등이 중·장기적으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21세기 세대의 처지를 역지사지로 헤아려보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미 많이 늦었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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