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인턴이 가봤다] 책 한 권이 수십만 원에 팔리는 정치인 북 콘서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인턴이 가봤다] 책 한 권이 수십만 원에 팔리는 정치인 북 콘서트

입력
2020.01.11 12:00
수정
2020.01.11 12:50
0 0
지난 주말 열린 한 여당 국회의원의 북콘서트 행사장. 복도를 따라 화환 50여개가 늘어서 있다. 이미령 인턴기자
지난 주말 열린 한 여당 국회의원의 북콘서트 행사장. 복도를 따라 화환 50여개가 늘어서 있다. 이미령 인턴기자

지난 주말 경기도의 한 행사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A의원의 북콘서트 현장. 건물 입구부터 행사가 열린 대강당 앞까지 화환 50여개가 복도를 따라 늘어서 있다. 화환을 보낸 이들은 동료 국회의원과 교우회, 동문회부터 소속 상임위원회의 피감기관까지. 행사장 밖에는 포토존까지 설치돼 행사 시작 한 시간 전부터 A의원과 사진 찍고 악수 하려는 이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북콘서트라고 하기에는 의아한 풍경이 여러 번 연출됐다. 악수와 사진 촬영, 명함 교환이 이어지는 포토존 양 옆으로 스태프 16명이 책을 팔고 있었다. 매대 위에 쌓인 책만 족히 500권은 넘어 보였다. 참석자들은 책 옆에 쌓인 흰 봉투를 하나씩 집어 간 뒤 현금을 넣고 봉투 겉면에 이름과 소속을 적어 파란 상자에 넣었다. 책만 없었다면 딱 결혼식장에서 축의금 내는 장면이었다.

책 없었으면 결혼식장으로 착각할 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나 북콘서트는 자신이 쓴 책을 홍보하고 유권자를 만나는 장이다. 그러나 정해진 값에 마음대로 웃돈을 얹어 책 값을 지불하는 관행 탓에 깜깜이 정치자금을 주고받는 장소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돈을 받는 출판기념회를 아예 금지하자거나, 정가 판매만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기도 했지만 한때뿐이었다.

올해 역시 총선을 앞두고 출마 예정자들의 출판 기념회가 이어졌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출판기념회는 선거일 90일 전까지만 가능한데 이달 15일 데드라인을 앞두고 막바지 출판기념회가 봇물 터지듯 열리고 있다.

책은 1,2만원대인데 5만원권 가득 든 봉투가 왜 이리 많지

결혼식장 축의금 접수대를 연상케 하는 국회의원의 북콘서트 현장. 현장 스태프가 5만원권 지폐 여러 장이 든 봉투를 확인하고 있다. 이미령 인턴기자
결혼식장 축의금 접수대를 연상케 하는 국회의원의 북콘서트 현장. 현장 스태프가 5만원권 지폐 여러 장이 든 봉투를 확인하고 있다. 이미령 인턴기자

이날 가장 고개를 갸웃하게 했던 것은 책 구입 가격이었다. 책 정가는 1만5,000원이었지만 가격을 묻는 기자에게 스태프는 “ ‘원하는 만큼’ 내면 된다”고 말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봉투에 1만원권 지폐를 여러 장 넣는 이들도 있었으나 5만원권 비율이 더 많아 보였다. 책 한 권을 받아가며 5만원권 지폐를 여러 장 넣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5,000원권 지폐는 잘 보이지 않았으며 돈을 거슬러주는 이도 없었다. 직원에게 많이 내는 것은 상관이 없느냐고 물어보자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열 권 가량 두 손 가득 책을 사가는 이들도 있었다. 책 여러 권을 가져가는 이를 붙잡고 물어보자 “기관에서 나왔는데 내가 대신 가져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이는 책을 100권 사겠다며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직원이 여는 것을 보니 5만원권 지폐가 수십 장은 돼 보였다. 한 남성은 아예 ‘후원금’이라고 적힌 두툼한 봉투를 박스에 넣었다. 그런가 하면 행사 시작도 전에 책을 사고 사라지는 이들도 있었다. 이곳까지 찾아와 행사는 참석도 않고 책만 사 가는 이유를 묻자 하나같이 “일이 바쁘다”며 황급히 사라졌다. 매대 위에 쌓여 있던 책은 행사 시작 5분 전에 이미 다 팔려 직원은 매대 뒤쪽 박스에 있던 책을 다시 꺼내 올리기 시작했다.

며칠 후인 평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는 자유한국당 B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평일 낮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탓인지 규모는 비교적 소박했지만 이곳에서도 다소 어리둥절한 광경은 비슷하게 펼쳐졌다. 이곳 역시 동료 의원과 기업, 동기회 등에서 보낸 8개 화환 옆에는 포토존이 마련됐다. 대부분 양복을 차려 입은 참석자들은 포토존에서 B의원과 사진 촬영과 악수를 하고 일부는 명함을 교환했다.

참석자들이 현금을 넣은 흰 봉투를 내밀면 스태프는 이를 받아 뒤쪽 박스에 넣었다. 책 정가는 2만7,000원이었으나 이 곳 역시 1,000원권이나 5,000원권 지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책 뒷면에 적힌 가격은 무시해도 되는 건가 의문이 들던 사이 옆에서 한 노년 남성이 2만원을 내밀었다. 스태프는 손사래를 쳤다. 최소 책에 적힌 가격 이상은 내야 하는 것이다. 이날 매대에는 카드결제기까지 놓여 있었다. 카드로 책을 구입하려면 정가를 내야 하느냐 물어보니 스태프는 “(정가보다) 더 결제해도 상관 없다”고 답했다. 참석자들은 책 구매 후 방명록에 이름과 주소, 소속을 남겼으며 스태프는 그 옆에서 “명함을 남기고 가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눈도장에 이토록 신경을 쓰는 모습 역시 딱 결혼식장을 떠오르게 했다.

북 콘서트라더니 책은 실종? 내빈 소개ㆍ축사만 한 시간 넘게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 걸린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및 북콘서트 홍보물. 벽에 걸린 행사 홍보물 12개 중 8개가 북콘서트 및 출판기념회 홍보물이다. 정해주 인턴기자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 걸린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및 북콘서트 홍보물. 벽에 걸린 행사 홍보물 12개 중 8개가 북콘서트 및 출판기념회 홍보물이다. 정해주 인턴기자

A의원의 북 콘서트는 여당 현직 국회의원이었던 만큼이나 규모도 크고 인맥도 화려했다. 행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참석자는 2,500여명. 900석 규모의 행사장이 가득 찼고 자리가 없어 일부는 서서 이날 행사를 지켜봤다. B의원의 출판기념회는 국회의사당과 지역구에서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는데, 첫 행사였던 이날은 400석 규모의 회의실 절반 가량이 채워진 채로 진행됐다. 행사 규모에는 차이가 났지만 내빈 소개와 축사, 축하 영상, 축하 공연 등 구성과 순서는 비슷했다. 무엇보다 두 곳 모두 허탈할 정도로 책은 뒷전이었다.

지역구에서 열린 A의원 행사에서 동료 의원들은 단상에 올라 하나같이 “○○○의원을 성원해달라”, “△△(지역구 이름)에 딱 맞는 국회의원” 같은 발언을 이어갔다.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동료 정치인의 축하 영상 메시지도 비슷했다.

축하 공연에 합창까지 이어졌다. 각 좌석에는 지역구 이름이 인쇄된 종이가 놓여 있었는데, 행사가 시작되자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는 참석자들에게 “의자에 놓인 종이를 들어달라”며 오프닝 합창을 제안했다. 무대 위 화면에는 김수철의 ‘젊은 그대’에 지역구 이름을 넣어 개사한 노래 가사가 띄워졌다. 참석자들은 종이를 좌우로 흔들며 다 함께 이 노래를 불렀다. 이쯤 되니 행사 목적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 같은 내빈 소개와 축사, 축하 공연은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이어졌다. 본격적인 책 관련 좌담 전 마지막 축하 영상이 시작되자 내빈석에 있던 이들은 대부분 자리에서 일어나 행사장을 나갔다. 뒷좌석에 있던 참석자들 역시 썰물같이 빠져나갔다. 예정시각인 3시를 한 시간 반 넘겨 4시 반에 시작한 북 콘서트는 정작 40여분 만에 끝이 났다.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열린 야당 의원의 출판기념회 현장. 행사 시작 무렵 좌석의 절반 가량이 찼지만(위) 내빈 소개 및 축사가 끝나고 책 소개가 시작되자 상당수 참석자가 빠져 나갔다. 정해주 인턴기자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열린 야당 의원의 출판기념회 현장. 행사 시작 무렵 좌석의 절반 가량이 찼지만(위) 내빈 소개 및 축사가 끝나고 책 소개가 시작되자 상당수 참석자가 빠져 나갔다. 정해주 인턴기자

B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동료 의원들의 발언은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당당하게 “책 내용은 모른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이 같은 발언에도 아랑곳 않는 눈치였다. 대신 의원들은 “○○○의원이 더 큰 인물이 되도록 뜨거운 사랑을 보내달라”거나 “올 4월에 더 크게 써주시라”는 발언을 이어갔다. 또 다른 의원은 “(총선이) 불과 100일 밖에 안 남았다”고 말한 뒤 “4월 15일, 큰 역사 여러분이 만들어주시겠습니까?”라고 외쳤다. 관객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예정 시각을 한 시간 넘겨 시작한 출판기념회는 그마저도 1,2부로 나눠 1부에는 바이올린 공연이 진행됐다. 그 사이 귀빈석을 포함한 대부분 좌석이 비기 시작했다. 정작 책 과련 좌담은 초반 참석 인원 절반 이상이 자리를 뜬 채로 시작해 20여 분 후 종료됐다.

“책이요? 동호회 회원들과 ”

특이하게 A의원은 “이 곳 주인공인 주민들을 소개하겠다”며 PPT 1장에 8명 이름이 적힌 44쪽짜리 파워포인트를 만들어와 10분 넘게 주민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렀다. 대부분 아파트 경로당 회장이나 노인회 회장, 지역 스포츠 클럽 회장, 인근 중학교 학부모회 회장 등이었다. ‘저렇게 까지…’라는 의문에 참석자들에게 말을 건넸지만 대부분 ‘다 알면서 왜 그러느냐’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답을 피했다.

그나마 일부 참석자들이 전해준 말은 이들은 애초부터 책에 관심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김민수(가명ㆍ63) 씨는 “평소 (A의원과) 탁구를 같이 쳤다.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지역구 주민이자 의원의 동문이라 밝힌 허준석(가명ㆍ60) 씨는 지역구 주민들이 많이 참석한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지역구 잔칫날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그 말대로 참석자 대부분은 50대 이상 지역구 주민들로 보였으며 이들은 의원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A의원실 관계자는 “2주 동안 열심히 준비했는데 주민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셨다”며 “지역구 주민들을 많이 초청했다”고 말했다.

B의원 출판기념회에는 등산복을 입은 중년 남녀 무리도 눈에 띄었다. 산악회 회원 20여명과 함께 이곳을 찾은 한 중년 남성은 어떻게 왔냐는 기자의 물음에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를 보여줬다. 그가 내민 화면에는 “○○○○ 산악회 회원님들, B의원 출판 기념회가 ○○일 열린다.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서울에 가니 △△공원에 모여달라”고 쓰여 있었다.

입법 로비 창구 역할 없애자는 목소리는 나오지만…

책 100권을 사겠다는 이가 책 값으로 내민 봉투를 열자 5만원권 지폐 수십 장이 나온다. 책 한 권을 사면서 봉투에 5만원권 여러 장을 넣는 이들도 있다. 이미령 인턴기자
책 100권을 사겠다는 이가 책 값으로 내민 봉투를 열자 5만원권 지폐 수십 장이 나온다. 책 한 권을 사면서 봉투에 5만원권 여러 장을 넣는 이들도 있다. 이미령 인턴기자

출판기념회가 취지를 벗어나 선거 유세를 위한 지역구 행사나 법망을 피한 정치자금 모금 행사로 전락했다는 지적은 매 선거를 앞두고 반복됐다. 출판기념회 수익금은 정치자금에 해당하지 않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거나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책 한 권 값으로 수백, 수천 만원을 내도 된다. 말 그대로 깜깜이 후원금이다.

편법적인 후원금 모금을 넘어 입법 로비 창구로 이용될 우려도 있다. 과거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은 한국유치원총연합회 관계자들로부터 2013년 출판기념회 축하금 명목으로 받은 3,360만원이 뇌물로 인정돼 실형을 선고 받았다. 때문에 의원들은 출판기념회 매출액 관리에도 극도로 조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 전직 보좌관은 “출판기념회 매출 내역은 보통 의원들이 직접 계산한다. 내역은 보좌관한테도 공유를 잘 안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출판기념회 수익금은) 통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 같은 관행이 일종의 고육지책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자금법상 최대 1억 5,000만원까지 모금 가능한 후원금은 선거 비용으로 쓰기에 그 액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사용처도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합법적으로 돈을 모을 수 있는 마지막 남은 통로가 출판기념회”라고 덧붙였다.

책 값만큼만 받게 하자는 법안은 현역 의원들이 번번이 퇴짜

이 같은 지적이 계속되자 2014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공직선거 후보자의 출판기념회를 사전에 관할 선관위에 신고하도록 하고, 책 정가를 넘는 금품 제공을 금지하는 내용의 정치관계법(공직선거법ㆍ정당법ㆍ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아직 법제화되지 않았다. 정치권 역시 관련 법안을 내놓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기지 못하고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2018년 8월에는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이 출판기념회 사전 신고와 책 정가 판매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20대 국회가 임기 종료까지 불과 몇 달 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국회 파행이 계속돼 사실상 법안 개정은 물 건너간 셈이다.

출판기념회를 법적으로 규제하기보다 정치인들의 자정 노력을 촉구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최근 일부 의원들은 서점이나 출판사를 통해 북콘서트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행사장에 모금함을 두지 않고, 책 판매와 관련해서는 모두 서점이나 출판사에 맡겨 의원 측에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식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출판기념회를 그대로 두는 게 본인(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한 만큼 법 개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치인들이 스스로 자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유권자들이 알아서 (논란이 될 수 있는) 출판기념회 행사 참석을 자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미령 인턴기자

정해주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