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2020년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승일 산업부 차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홍남기 경제부총리,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임금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체결하는 근로계약에 의해 정해지고 그 계약은 사적 자치의 영역에 맡겨진다. 법률이 임금의 수준과 세부적 구성 방식을 규율하는 것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원칙적으로 노사는 최저임금액을 넘는 한 자유롭게 임금을 결정할 수 있다. 임금에 대해 법적 규율이 가해지는 예외적 경우는 그것이 차별의 수단이 될 때이다. 이와 관련하여 근로기준법, 기간제법, 파견법 및 남녀고용평등법 등은 균등 대우 원칙,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금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핵심적인 기준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다.

잘 알다시피 현 정부의 대표적 정책 과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실현이다. 2018년 10차 개헌 논의 과정에서 제출된 대통령 개헌안에는 위 원칙을 헌법 규정으로 확인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단지 남녀 근로자의 차별 해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득 양극화 및 세대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고 노동시장의 공정성과 활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관철되어야 할 과제이다.

지난 연말 정부는 2020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그 일환으로 10대 주요 과제를 제시했다. 고용노동부는 그 아홉 번째 과제로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계속 추진하고, 세부 계획으로는 ⑴ 직무급 도입 컨설팅 등을 지원하고 ⑵ 직무평가 도구 개발 등 인프라를 확대하며 ⑶ 연공급제에서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점진적 방안을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위 임금체계 개편 정책이 2000년대 초부터 거의 20년 동안 추진되었음에도 이른바 좋은 일자리라고 하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서는 사실상 실패한 점을 고려한다면, 고용노동부가 이전과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세부 추진계획을 채운 것은 실망스럽다. 이런 일이 일어난 원인은 임금체계 개편 정책의 실패에 대한 원인 분석이 부족했기 때문인 듯하다.

직무ㆍ능력 중심 임금체계 전환이 미뤄지는 이유로 흔히 거론되는 것은 기업 구성원들이 직무급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거부감이 크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연공급제가 근속기간에 따른 임금 상승 폭이 크고, 일단 체계 내로 들어온 정규직에 대해선 거의 예외 없이 그 혜택을 누릴 기대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근속기간에 따라 3배 이상 차이가 나는 임금 격차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별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고, 동일 직무를 맡더라도 근속기간에 따라 무조건 상승하는 임금 시스템은 정규직들의 공동 이익을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이렇듯 연공급 체계가 자신의 신분적 지위를 강화하고 집단적 이익을 보장하는 상황에서 대기업 및 공공부문의 정규직들이 임금체계를 바꿀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가 기업 구성원의 자발성만으로 임금체계의 개편을 추진한다고 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이 정책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선 그 목표에 임금 차별의 해소 및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실천을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위 원칙은 국가 법이 임금체계에 개입하는 대표적 계기이므로, 이를 근거 삼아 행정 및 사법 권한이 행사되어야 한다. 다른 국가 역시 노사의 선의(善意)에 기대어 평등한 임금체계를 만든 것이 아니다. 외국도 근로자들 사이의 임금 격차는 근속기간의 차이에 기반해 설계되곤 하는데, 여러 국가의 행정 기구와 법원은 적극적으로 이를 비합리적인 임금 차별로 파악하여 불법화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 고용노동부는 이미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에 근거해서 임금 차별에 대한 시정명령 권한을 가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노사의 자발성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외국 정부와 법원의 경험을 조사하고 현행 시정명령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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