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궈위는 거짓말쟁이, 홍콩 보고도 모르나”
“무능한 정부의 가짜 뉴스, 대만은 홍콩과 달라”
대만이 11일 총통 선거를 앞두고 둘로 쪼개졌다. 민주진보당(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진영은 중국국민당(국민당)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 시장을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웠다. 이에 한 시장 측은 “가짜 뉴스”라고 맞받아치며 차이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다. 특히 특히 7개월 넘게 지속된 홍콩 민주화 시위를 각자 아전인수로 해석하면서 선거 승리의 기폭제로 활용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9일 오후 타이베이(台北) 최대 번화가인 시먼딩(西門町). 인파가 몰리는 교차로 앞에서 한 여성이 마이크를 들었다. 옆에 선 일행은 ‘우리는 홍콩인입니다. 우리의 피로 증명했습니다. 중국의 공포에 맞서 선거로 대만의 민주주의를 수호해 주세요’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부인과 함께 나온 첸(陳ㆍ39)씨는 “대만도 홍콩처럼 될 수 있어 무섭다”며 “눈을 부릅뜨고 똑똑히 지켜 보면서 반드시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진당을 지지한다는 그는 “해외에 나가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와 투표하려는 건 이전에는 보지 못하던 현상”이라며 “홍콩 시위가 이번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만난 70대 황(黃)씨는 “한궈위는 하도 거짓말을 해서 믿을 수 없다”면서 “그가 당선되면 우리도 홍콩처럼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한걸음 뒤로 물러나 인터뷰를 거부하며 손사래 치던 두 명의 다른 70대 노인도 “한궈위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며 “가오슝 시장에 당선돼 1년간 대체 뭘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며 지나가던 저우(周)씨에게 말을 걸었다. 올해 20살이 돼 처음으로 투표를 한다고 했다. 그는 “당파마다 입장이 워낙 뚜렷하게 대비돼 이번에 잘못 투표하면 우리의 미래가 이상하게 바뀔 것”이라며 “차이잉원 후보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격차만큼 득표율 벌어질까
선거를 앞두고 지난달 말까지 공개된 일부 여론조사에서 차이 총통이 한 시장과의 격차를 30%포인트 넘게 벌리자 일각에서는 “선거를 해보나 마나”라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현지 소식통은 “해외 도박사들이 돈을 걸고 전망한 두 후보의 당선 확률은 5대 5라는 것이 정설”이라며 “실제 득표율 차이가 예상처럼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정부 관계자도 9일 “기껏해야 수십만 표, 많아야 100만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만 유권자 1,900만명 가운데 투표율을 70% 가량으로 잡을 경우 6%포인트 가량에 불과한 득표율 격차다.
무엇보다 세대별 유권자 분포가 팽팽하게 맞서 있다. 40~50대가 각각 전체 유권자의 19%를 차지해 가장 많고 30대 18%, 60대 16%, 20대 16%, 70세 이상 12%로 고르게 분포돼 있다. 60대 이상 장ㆍ노년층은 한 시장, 30대 이하 청년층은 차이 총통 지지세가 확연한 것을 감안하면 어느 쪽도 우세를 장담하기 어려운 구조다. 홍콩 사태 이후 젊은 유권자들이 차이 총통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이들의 실제 투표율은 50%대에 그쳐 60대 이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점도 변수다. 4년 전 66%이던 투표율이 이번 선거에서 72%로 상승할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에서, 두 후보 진영 모두 지지층 동원에 나설 경우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기 쉽지 않다. 이에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 150만표 가량의 부동층이 승부를 가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시먼딩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차이 후보 선거 홍보사무실을 찾았다. 11일 선거 결과 개표 방송을 지켜보며 당선이 확정될 경우 사무실 앞 도로를 막고 축제를 벌일 아지트와도 같은 곳이다. ‘2020년 대만은 이긴다’라는 차이 후보의 슬로건을 보여주던 총책임자 황(黃ㆍ75)씨는 “선거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중국이 국민당에 자금을 지원한 것”이라며 “돈을 주고 표를 사는 행위를 막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증거를 잡은 게 있느냐’고 되물었더니 “찾아내기 어려운 교묘한 방식으로 한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그는 “4년 전 차이 총통이 당선될 당시보다 10만표 더 많은 320만표 차이로 승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샤이 한궈위’ 반격으로 기세는 올렸는데
오후 5시를 넘기자 해가 저물어 주변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총통부 앞에서 열리는 한궈위 후보 유세 현장을 찾았다. 왕복 10차의 십자형 도로를 모두 막아 놓고 한국의 광화문광장처럼 대규모 행사를 열 수 있는 곳이다.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를 저마다 손에 들고, 국기 문양으로 빨간색과 파란색이 새겨진 옷과 모자로 온몸을 휘감은 지지자들은 “한궈위 당선, 민진당 내려와”를 사방에서 번갈아 외치며 흥을 돋웠다. 깃발에는 ‘대만은 안전하고, 국민들은 돈을 잘 번다(臺灣安全, 人民有錢)’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중국에 맞서 안보를 강조해온 차이 총통의 논리에 반박하면서 중국과의 협력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선거 막판 100만 동원령을 증명하듯 80만명(주최측 추산)의 인파가 몰리면서 무대 앞까지 걸어가는 건 불가능했고, 유세장 한가운데에 들어서자 이용자가 폭증해 휴대폰 신호마저 끊겼다.
다만 유세장 분위기는 앞서 시먼딩과는 확연히 달랐다. 40대 이상 중ㆍ장년층이 유세장을 장악하면서 젊은층을 찾기 쉽지 않았다. 간간이 청년들이 지나가면 “젊은이들, 와줘서 고맙다”고 아낌없이 손을 흔들며 인사할 정도였다. 모녀인양 팔짱을 꼭 끼고 걸어가는 두 여성을 만났다. 예전 직장 동료 사이라고 소개한 55세 여성은 “한궈위는 교육을 중시하고 약자들에게 관심을 갖기 때문에 좋다”면서 “진정성으로 가득 찬 그의 눈빛을 봐라, 거짓말을 많이 한다는 비판은 죄다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다. 옆에 있던 강(姜ㆍ27)씨는 “차이잉원은 말만 번지르르하지만 한궈위는 많은 일을 할 것”이라며 “다만 주위 친구들은 나오 달리 한궈위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웃었다.
인파 속을 좀더 헤치고 들어가자 무대를 주시하며 경청하고 있는 송(宋ㆍ45)씨가 눈에 띄었다. 동갑내기 남편과 함께 나왔다는 그는 “한 시장이 당선되고 한 일이 없다거나 차이 총통에게 지지율이 많이 뒤진다는 이야기는 모두 가짜 뉴스”라며 “경제가 발전하고, 치안도 나아지고, 교육환경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어 “차이 총통이 대만의 주권을 강조하지만 집권 이후에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반문했다. 잠자코 지켜보던 남편에게 ‘주변의 40대 친구들은 어느 후보를 지지하느냐’고 묻자 “반반”이라고 답했다. 연령별 유권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40대가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았다고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뒤쪽에 30대 남성 4명이 모여있었다. 이들은 “정부가 매체를 장악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 참을 수 없어 나왔다”면서 “호주로 망명했다는 중국 스파이도 가짜 뉴스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민진당은 더 나쁜 짓을 하면서 국민당만 공격하는 내로남불의 전형”이라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한궈위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훨씬 많기 때문에 우리는 지지율 격차를 믿지 않는다”며 승리를 확신했다.
무대 위에서는 “지난 3년 반 동안 여러분 살림살이가 나아진 게 있느냐”며 분위기를 띄우고 참석자들은 “아니요”를 외치면서 열기가 고조됐다. 유세장 한 켠에서 토론을 벌이는 70대 남성 5명에게 다가갔다. 이들은 “차이 총통은 집권기간 정치시스템을 무너뜨리고 능력이 아닌 친분에 얽매여 정부 인사의 전횡을 휘둘러 정부기관에 부패가 만연했다”고 성토했다. 이에 ‘젊은이들은 차이 총통을 훨씬 많이 지지하는 것 같다’고 딴지를 걸었다. 그러자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교육이 문제다, 아이들이 세뇌 당했다.” 대만 유권자들은 이렇게 총통 선거 유세장에서 그간 쌓아온 불만을 터뜨리며 결전의 그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타이베이=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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