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전면전 땐 대선 앞두고 치명상… 반격 없이 발빠르게 출구 모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이란의 공격에 대해 군사 반격을 선택하지 않은 데에는 미군 인명피해가 없었고 이란의 공격을 ‘체면 세우기용’으로 인식한 결과로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이란과의 확전에 부담을 느낀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외교적 해법으로 선회하는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CNN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ㆍ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주요 언론들에 따르면 미국은 7일 오전부터 인공위성으로 포착한 이란군의 움직임과 감청 등을 통해 이란의 보복 공격을 예상하고 분주하게 대비했다. 오후 2시쯤 이란이 공격해올 것이 확실하다는 정보기관의 경보가 전달됐으며 오후 4시쯤엔 미 당국자들이 기자들에게도 공격 가능성을 알렸다. 이날 오후 그리스 총리와의 회담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도 상황실로 합류해 수시간을 참모들과 보냈고, 이 과정에서 국방분야 참모들은 미군 인명피해시 반격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오후 5시가 넘어 실제 이란의 공격이 발생하자 국가안보 수뇌부들은 오후 7시30쯤 백악관 상황실로 집결했다. 초미의 관심은 미군 인명피해 여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피해자가 한 명이라도 나올 경우 이란 시설을 공격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고 한 상원의원은 전했다. 하지만 초기 평가에서 미군 피해가 없다는 보고가 나오자 상황실의 분위기는 누그러졌다고 한다. 당일 밤 즉각 반격하는 방안도 한 때 검토됐지만, 이란의 의도 등에 대한 추가정보가 나올 때까지 보류하기로 했다.
특히 미군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에 대해 이란의 공격이 자국에서 체면을 세우기 위한 과시용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해법을 선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날 회의에서 국방담당 보좌관이 “이란의 공격은 미국인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긴장 완화의 길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밤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제임스 인호프 공화당 소속 상원 군사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 사망자가 없다는 사실이 협상의 문을 열어준다고 강력히 믿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달리 보면 애초부터 이란과의 확전 의사는 없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공격해오면 신속하고 불균형적으로 반격할 것”이라며 이란의 문화유적지를 포함한 52곳을 대상지로 거론했다. 하지만 이란에 대한 반격은 또 다른 보복 타격전으로 이어지고, 이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빠져 나오고 싶은 중동 문제의 수렁에 더 깊이 발을 담그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란과의 전면전은 미국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한 이라크전이나 아프가니스탄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할 거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란이 국토가 훨씬 넓고 국력이 월등하며 국민적 통합력도 남다르기 때문이다. 자칫 이란과의 확전으로 미군 인명피해가 커지고 증시가 폭락하면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란이 인명피해를 끼치지 않은 선에서 미국에 대한 보복 공격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사를 시사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중동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출구를 찾은 셈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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