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역에서 푸틴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보여 준 한 주였다.(포브스)”
이라크 미군 기지 두 곳이 이란 미사일에 난타당하던 8일(현지시간) 터키 수도 이스탄불에선 의미심장한 공동성명이 나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만나 전면 내전 위기에 휩싸인 리비아에 돌연 휴전을 촉구한 것. 푸틴 대통령은 전날에는 새해 첫 순방지로 미군이 철수한 시리아를 3년 만에 깜짝 방문했다. 그러자 최근 불붙은 아랍권의 ‘반미’ 기류를 틈 타 푸틴이 광폭 행보를 통해 중동 ‘평화 중재자(peacemaker)’ 역할에 쐐기를 박으려 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푸틴이 이날 터키를 찾은 명목상 이유는 ‘투르크 스트림’ 가스관 개통식 때문이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실어 나르는 양국 경제 사업이다. 하지만 속내는 공동성명에서 드러났다. 두 정상은 미국의 이란 2인자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제거를 두고 “지역 안보와 안정을 해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어 동ㆍ서로 나뉘어 내전 중인 리비아를 향해 “양측은 12일 자정부터 휴전에 들어가라”며 구체적 시점을 못박아 분쟁 중단을 촉구했다. 지속적으로 중동 안보 불안을 야기하는 미국과 다르게 러시아는 평화를 지향한다는 메시지를 은연 중 발신한 셈이다.
특히 공개적으로 리비아 휴전을 요구한 푸틴의 발언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간 터키는 국제사회가 인정한 리비아통합정부(GNA), 러시아는 동부 군벌 리비아국민군(LNA)을 각각 지지해 왔다. 때문에 푸틴이 에르도안과 모종의 타협을 거쳐 리비아 내전 사태에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는 11일에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모스크바로 초청해 이란, 리비아 등 중동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푸틴은 7일에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예고 없이 찾아 러시아 주둔군 지휘본부에서 자국 군인들을 격려했다. 이 자리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러시아의 군사원조에 사의를 표하며 푸틴을 한껏 예우했다. 러시아는 2015년부터공군 병력을 파견해 반군과 내전 중인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아사드 정권이 안정을 찾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큰 역할을 했음을 전 세계에 상기시키기 위한 의도적 방문”이라고 평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푸틴의 일련의 행보가 단순한 야망을 넘어 중동 내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적 목표와 맞닿아 있다고 지적한다. 미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의 안드레아 켄달 테일러 선임연구원은 FP에 “푸틴은 기회주의적인 인물로 솔레이마니 제거에 따른 중동 불안정을 이용해 미국의 명성을 더럽힐 수 있다면 모든 걸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포브스도 “러시아는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이라는 인상을 중동 국가들에 심어주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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