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 <2> ‘중공업가족의 유토피아’ 양승훈 교수
거제 조선소서 5년 동안 일하며 조선산업 흥망성쇠 직접 추적
“경남 거제 말고도 대한민국에 죽어가는 지방 산업 도시가 많아요. 그 곳 사람들은 고통 속에 신음하는데 정치는 손 놓고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죠. 그래서 안 된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 답답한 마음에 책을 썼습니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 내 배움홀에서 열린 제60회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북콘서트 두 번째 강연. 교양 부문 수상작 ‘중공업가족의 유토피아’를 쓴 양승훈 경남대 교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중공업가족의 유토피아’는 양 교수가 경남 거제 조선소 현장에서 5년 간 일하며 몸소 겪은 조선산업의 흥망성쇠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기록한 책이다. 양 교수는 거제가 왜 흥했고 왜 망했는지 그 원인과 구조를 제대로 들여다봐야 제2, 제3의 거제의 몰락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업이 흔들리자 바깥에선 위기의 진원지를 찾아 책임을 묻느라 바빴다. 경영진의 방만경영과 귀족 노조가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양 교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기틀을 닦아 온 ‘중공업가족’이 해체되면서 거제의 몰락이 찾아왔다고 진단한다.
중공업가족의 노동자들은 일터와 삶터가 철저하게 일치했다. 새벽 6시부터 출근해 일하는 조선소 노동자들은 회사 밖에서도 작업복을 입고 활보했다. 회사는 나의 자부심이자 내 가족의 정체성이었다. 양 교수는 “조선업이 잘 나갔던 배경 뒤엔 회사와 한몸이 됐던 노동자들의 헌신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착취였고 수탈이었지만 노동자들은 모두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2008년 전 세계 금융위기로 배 수주가 뚝 끊기자, 조선업계는 해양플랜트란 신규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배와 달리 플랜트는 완벽한 설계 도면이 필수적이다. 똑똑하고 젊은 엔지니어들을 서울에서 모셔왔다.
하지만 이들은 중공업가족이길 거부했다. 주말마다 서울행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고, 월급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가차 없이 떠났다. 설계가 부실해지자 현장 노동자의 업무는 더 위험해졌고 그 몫은 하청노동자에게 돌아갔다.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하청노동자에게 중공업 가족은 허상이었다.
양 교수는 “오로지 한 가지 산업으로 움직이는 포항, 여수, 광양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고 경고했다. 해법은 없을까. 양 교수는 지방 도시를 살리기 위해선 가족 동반 정착률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에겐 산업의 변화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직업 재교육을 제공해주고, 중공업가족의 여성들에게는 승진할 수 있는 지속적 일자리를 마련해주자는 것. 산업화 시대처럼 노동자의 헌신, 여성의 희생에 기대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게 양 교수의 결론이었다. 망해가는 산업과 소멸해가는 지방 도시에 무작정 돈만 쏟아 붓는 정부 정책에 대한 일침이기도 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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