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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인사와 직권남용

입력
2020.01.09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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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7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예방하기 위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홍인기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7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예방하기 위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홍인기 기자

형법 제123조는 ‘직권남용’이라는 제목을 달고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벌금 부분이 추가된 것 말고는 1953년 제정 당시 내용을 그대로 유지한 이 죄목이 새삼 위력을 발휘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사건 때였다. 박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청와대 실세 간부들이 줄줄이 권한을 남용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 이런 고위 공직자의 직권남용 사례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인사’다. 국정 농단 재판에서 블랙리스트 실행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한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직업공무원제를 헌법이 보장”하는데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면직 근거”를 갖추지 못해 직권남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문체부 국ㆍ과장 전보 혐의를 받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무죄였다. 권한 내의 적법한 인사 간여라고 본 것이다.

□ 후배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보복까지 했다며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해 대법원이 9일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통상의 검사 인사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지만 그 같은 원칙이 인사의 “절대적 기준”이라 할 수 없으며 검찰 인사ㆍ예산 담당으로서 안 전 국장에 “재량권”이 있다고 본 것이다. 면직이 아닌 인사를 직권남용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 마침 전날 법무부의 검사장 인사가 구설에 오르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종횡무진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족을 떼낸 모양새가 됐으니 그 수사에 환호하던 야당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판례에 비추어 이 인사가 법적으로 문제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6개월 전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윤 총장이 조율했다는 검사장 인사에 대해 “윤석열 사단 일색”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던 것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 인사에 끓어오를 줄 알았던 검찰이 생각보다 잠잠한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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