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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칼럼] 오스카는 과연 어떤 답변을 줄까

입력
2020.01.09 18:0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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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수상했다. 연합뉴스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수상했다. 연합뉴스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이란 장벽을 넘으면 여러분들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 ‘기생충’으로 골든글로브에서 한국영화로서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물론 ‘기생충’만이 아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다른 작품들을 상찬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말은 또한 영어권이 아닌 비영어권 영화들이 겪어온 차별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한다. 그 언어는 영화다”라는 말로 그 장벽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냈다.

사실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사실보다 더 놀랍게 다가오는 건 미국의 현지 반응이다. 영화제 수상은 영화인들의 평가가 담긴 것이지만, 미국 현지에서 상영관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가며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건 영화가 보편적으로 통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토록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기생충’이 지역적 특수성을 극복하고 전 세계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었을까.

흔히들 ‘봉테일’이라고 부르는 봉준호 감독은 그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이 갖는 장벽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더욱 세심한 신경을 써온 것으로 유명하다. 봉준호 감독 영화의 번역가로 ‘기생충’ 성공 이후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달시 파켓이 외국인들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서울대’를 ‘옥스퍼드’로, ‘짜파구리’를 ‘ram-don’(ramen+udon)으로 번역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해진 일화다. 하지만 그가 문화잡지 쿨투라에 직접 쓴 ‘기생충’ 번역 작업에 대한 글을 보면 봉준호 감독이 작업 전 이미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와 구절에 대해 길게 코멘트를 달아 보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만큼 봉준호 감독은 번역 작업에 있어서 외국인들이 그 뉘앙스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을 찾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달시 파켓은 번역 자막에서 어렵고도 중요한 건 “원작에서의 의미와 감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해 내야 하는 것”이라며 번역을 그릇에 비유하기도 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표현을 해야 원작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는 것. 대사가 갖는 뉘앙스나 영화 속 인물들이 가진 복합적인 감정들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봉준호 감독 작품의 번역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봉준호 감독 작품에 자주 등장한 송강호의 대사 번역의 난점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그의 굽신대면서도 무시하는 태도나 우스우면서도 짠한 연기는 직역해서는 결코 담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 같은 달시 파켓이라는 번역가의 노력이 더해져 결국 봉준호 감독은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을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골든글로브 수상 소감에서 말한 ‘1인치 자막의 장벽’은 단지 언어적인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건 앞서도 말했듯 영어권을 중심으로 소외되어 오던 비영어권 문화 콘텐츠들이 느끼는 소외와 차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할리우드 영화들은 ‘주말의 명화’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성우의 목소리로 된 더빙으로 듣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원어에 자막을 붙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들은 아무런 저항감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애니메이션처럼 아이들을 위해 더빙을 하는 경우에도 관객들은 차라리 원어에 자막을 단 작품을 보려 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일상화된 영어 영화와 자막이지만 미국 같은 영어권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인들은 특히 자막이 달린 외국영화를 보는 일을 꺼린다고 한다. 여기에는 국가주의 시대 영어권 나라들이 가진 권력이 글로벌한 문화 소비에도 끼친 일방적인 영향이 깔려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된 글로벌 환경은 이런 문화 소비에서의 일방향적 흐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에서도 “오빤 강남스타일!”을 외치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방탄소년단은 언어와 국가의 장벽을 깨버린 ‘아미’라는 팬덤 공동체를 만들었다. 미국 소비자들도 이제 한국어로 노래하는 우리네 아이돌들에 열광한다. ‘기생충’이 골든글로브에서 상을 받고 아카데미상 수상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이미 미국 내 관객들에게도 통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금의 이른바 ‘글로벌 대중’들은 적어도 문화 소비에 있어서 점점 장벽을 허물어내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한국영화가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 영화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왜 한번도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 같냐”는 미국의 한 매체의 질문에 “오스카는 로컬”이라고 답한 바 있다. 이미 영화라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쓰고 있는 글로벌 시대에 아카데미가 계속 로컬에 머물 것인가를 되묻는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영어권에 비영어권이 기생하던 로컬의 시대에서 이제는 공생을 모색하는 글로벌 시대로의 변화. 오스카가 과연 어떤 답변을 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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