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란 군부 실력자 제거와
이란의 보복에 고조되는 국제위기
트럼프의 명분과 상황통제 능력 의문
미국의 예방전쟁 전략 뿌리는 꽤 오래됐다. 냉전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에 이어 수소폭탄 개발을 서두를 즈음 미국 국방부 산하 전략연구소는 1950년대 초 예방전쟁 개념을 내놓았고,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이를 심각하게 검토했다. 유일한 원자폭탄 보유 국가로서 선제 공격을 통해 소련의 핵개발을 무력화한다는 예방전략이다. 여기에는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한 미국의 두려움도 한몫했다.
하지만 수백 발의 원자폭탄을 소련의 군사기지와 산업시설에 투발시킨 뒤 항복을 받아낸다는 우악스러운 예방전쟁 방안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반대로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미국이 소련을 상대로 전쟁을 먼저 시작해 좋을 게 없다는 게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판단이었다. 미국의 군사전문가 앤드루 크레피네비치는 ‘제국의 전략가’라는 저서에서 예방전쟁을 꺼린 이유로 “소련은 유럽에서 미국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재래식 전력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미ᆞ소는 이후 수십 년간 소모적인 핵 군비 경쟁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미국의 선제공격과 예방전쟁 개념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 트라우마가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피해를 보기 전 암호해독 등을 통해 일본의 기습공격이 임박했다는 여러 조짐을 포착하고 있었음에도 사전조치를 취하지 못한 정보 실패의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방전쟁은 상대의 군사력에 대한 오판 가능성, 국내와 국제사회의 여론 문제, 정보의 불확실성과 판단의 주관성, 명분 등에 비춰 초강대국인 미국도 선뜻 발을 들여놓기 어려운 선택이다.
미국이 지난 3일 사실상 이란을 상대로 예방전쟁을 개시하고, 8일 이란은 이라크 미군 기지 두 곳에 대한 탄도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미군이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이라크에서 킬러 드론으로 폭사시킨 뒤 이란의 보복 대응은 언제, 어디를 타깃으로 하느냐의 문제였을 뿐이다.
이란의 일격에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는 미국의 공언이 있지만 양국의 거친 말폭탄 속에 확전 자제 분위기가 있기는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솔레이마니 제거 후 전쟁을 멈추기 위한 조치이지 시작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고 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미사일 보복 공격 후 미국이 이란 영토를 폭격한다면 두바이(아랍에미리트) 하이파(이스라엘)를 공격하겠다며 보복전 뒤 확전 회피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초강대국과 이슬람권 맹주의 자존심에 피의 보복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전쟁의 속성상 한 번 붙은 불길이 어디까지 번질지 누가 점칠 수 있을까. 세계의 위기 국면이다.
보복전과 향후 사태 전개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의 명분이다. 제3국에서 이란 군부 실권자를 제거한 미국이 국익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제대로 설명해야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솔레이마니 살해 후 “그는 오랜 기간 수천 명의 미국인을 죽였고, 더 많은 미국인을 살해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솔레이마니가 대규모 테러 음모의 배후라는 뜻이다.
미국의 주장대로 이란이 아무리 ‘악의 축’이고, 불량 국가라 해도 확전을 할 경우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솔레이마니 제거와 관련해 뚜렷한 테러 모의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과거 베트남 전쟁 개입의 단초가 된 통킹만 사건이나 대량 살상무기 개발을 이유로 한 2차 이라크 전쟁과 후세인 제거 작전에서 미 행정부는 전쟁 개시 명분의 증거 조작 비판을 받았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솔레이마니 제거와 관련해 미국 내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탄핵 국면에 따른 국내 정치적 위기와 연관시켜 보는 음모론도 적지 않다.
국제사회 역시 과거처럼 미국 논리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유엔 안보리 5개국과 독일이 이란과 맺은 핵 합의를 깨고 손볼 틈만 노려온 터다. 라이벌인 러시아ㆍ중국 못지않게 한 번 속지, 두 번 속느냐는 심정으로 보복전 추이를 지켜보는 미국의 우방국이 없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황을 통제할 능력이 있는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작금의 사태다.
정진황 뉴스1부문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