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자들은 정말 문고본을 싫어할까.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지만 말고 진짜 싫어하는지,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
그래서 실험했다. 출판사 마음산책은 지난해 10월 손보미 작가의 신작 소설 ‘맨해튼의 반딧불이’를 올 컬러 하드커버 양장본(1만3,500원)과 문고본인 경쾌한 에디션(6,800원) 두 가지 버전으로 출간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도 문고본이 인기 있었다. 1935년 영국의 펭귄북스가 시작한 문고본은 한 손에 잡히는 작은 판형, 가방에 넣어도 부담되지 않을 무게, 조금만 돈을 아끼면 살 수 있는 저렴한 가격 등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 독자들도 1970년대 ‘삼중당문고’ ‘을유문고’ 등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1980년대 단행본의 고급화, 컬러화 바람에 문고본은 점차 사라져 갔다.
출판의 위기가 거론되는 요즘, 역설적이게도 문고본이 다시 살아났다.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곳의 1인출판사에서 협력해 펴내는 ‘아무튼’ 시리즈뿐 아니라, 창비나 민음사 같은 정통 문학 출판사들이 ‘소설의 첫 만남’ ‘쏜살문고’ 같은 문고본을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문고본의 부활이라 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싸고 가벼운 책을 공급하겠다는 것보다, 근엄한 책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쪽에 가까워서다. 민음사에서도 ‘쏜살문고’를 두고 “사실상 리커버”라고 하는 이유다. 마음산책의 실험은 이 때문에 탄생했다. 정통 문학작품을 두 가지 버전으로 내보는 것이다.
이런 시도 자체는 대단히 이례적이다. 한국어 시장 자체가 좁아 정통 문학작품은 대개 소장가치를 생각해 양장본으로 냈다. 양장본, 문고본이 동시에 나오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가 돼야 한다. ‘1Q84’를 두 가지 버전으로 내놓은 문학동네 해외3팀의 황문정 부장은 “판매가 확실히 검증된 하루키의 책인데다, 다양한 버전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팬들을 감안해 이례적으로 문고본으로 제작했다”고 말했다. 예외적인 경우란 뜻이다.
결론적으로 양장본과 문고본을 동시에 내놓은 마음산책의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 석 달 정도 지난 지금 책이 팔린 비율은 ‘양장 5: 문고 4’였다. 책을 소장용으로 여기기 때문에 양장본을 더 선호하리라는 예측도, 덮어놓고 싼 책을 선호하리라는 예측도 모두 틀렸다. 마음산책의 최해경 편집팀 차장은 “양장본이냐 문고본이냐 그 자체가 책 선택을 결정짓진 않는다는 자체 평가를 내렸다”고 말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문고본 독자와 양장본 독자는 사실 대립적인, 경쟁적인 독자가 아니다”라면서 “다양한 형태와 가격대의 책을 내놓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출판 활성화에 도움된다”고 말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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