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푸조와 시트로엥은 한국에서 고급 수입차의 지위를 누렸다.
그 당시에는 브랜드에 관계없이 수입차는 곧 부의 상징이라는 공식이 통용되던 때이고, 푸조와 시트로엥은 콤팩트한 차체와 특유의 디자인으로 수입차 시장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프랑스 영화 “택시(TAXI)” 시리즈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주인공인 푸조 405와 406의 국내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때는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제법 높은 인지도를 가졌던 프랑스 브랜드지만, 프랑스 차 특유의 콤팩트하고 실용적인 구성은 크고 럭셔리한 자동차를 선호하는 국내 시장의 취향과 점차 멀어지면서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가 좁아지게 되었고,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급기야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서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2000년대 중반 디젤 엔진의 뛰어난 효율성을 앞세워 국내 시장에 다시 뛰어 들었지만 여전히 크고 럭셔리해 보이는 차를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의 성향 등으로 인해 옛 영광을 되찾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프랑스는 산악지형이 많고 도로가 좁은 현지 상황에 맞게 콤팩트하고 특유의 뛰어난 핸들링에서 강점을 보이는데, 이러한 특성은 국내 도로환경과도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수입사에서 국내 소비자들의 선호에 부합할 수 있는 패키징과 라인업에 대한 노력을 계속 기울인다면 언젠가는 옛 영광을 되찾을 날도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늘 갖게 된다.
한 가지 고무적인 점은 최근 푸조-시트로엥의 고급 브랜드 DS가 국내에 출시되었다는 것인데, DS의 독특한 디자인과 실내에 사용된 고급 소재들은 럭셔리한 자동차를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과도 부합되므로 소비자와의 접점을 지속적으로 늘려간다면 국내 시장에서 프랑스 브랜드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트로엥 디자인의 최신 DNA를 담아내다
오늘 시승한 시트로엥 C5 에어크로스는, 몇 달 전 시승했던 C3 에어크로스와 많은 부분에서 디자인 언어를 공유하고 있다.
특히 둥근 사각형을 곳곳에 활용함으로써 전면부의 강해 보이는 인상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귀여운 듯한 이미지를 녹여 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특히 후면부는 다소 평범하고 밋밋해 보일 수 있는 디자인임에도 테일램프 안의 둥근 사각형 그래픽을 통해 독특한 느낌을 주고 있다.
C5 에어크로스는 앞 범퍼와 사이드 스커트 부분에 붉은색의 사다리꼴 디자인으로 포인트를 주고 있는데, 한 가지 눈에 거슬리는 부분은 측면부에 사용된 포인트가 1열에만 들어가 있고 2열에는 모양은 있지만 포인트는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디자인적으로 산만해질 수 있어서 그렇게 처리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굳이 같은 모양을 만들어 놓았을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후면부에는 아무런 포인트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인데, 앞서 설명한 요소 외에도 머플러팁 주변이나 리어범퍼의 디퓨저 테두리 같은 부분에 동일한 색상의 포인트를 추가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C5 에어크로스는 국산차와 비교하면 투싼보다 조금 크고, QM6보다 조금 작은 체격을 가지고 있는데, 큰 차를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의 성향에 비추어 본다면 체격에서 다소 아쉽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라면 국내 도로 주행 환경이나 주차 환경에 비추어 볼 때 C5 에어크로스의 크기는 딱 적당한 정도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의외인 점은, 형제차인 푸조 3008과는 크기 면에서 불과 몇 cm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석에 앉았을 때는 3008보다 큰 차를 운전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 제원상 크기는 차이가 크지 않기에 아마도 실내 디자인에서의 차이로 인해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개성과 여유를 담아낸 C5 에어크로스
C5 에어크로스의 실내 구성은 형제차라 할 수 있는 푸조 3008의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계기판의 그래픽이나 센터페시아 모니터의 UI 구성은 3008과 공유하고 있는 부분들이 눈에 띄지만, 계기판의 경우에도 일부 모드의 경우 푸조 브랜드와는 다른 그래픽을 사용하고 있어서 차별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운전석 문을 열고 실내를 들여다보면 2분할된 직사각형 디자인의 송풍구 디자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다른 차량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디자인인데다가 송풍구의 테두리를 장식하고 있는 크롬 몰딩과 그 주변의 피아노블랙 색상의 패널이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센터페시아 모니터 하단부에는 공조장치와 오디오 조작 버튼이 자리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기능은 터치스크린에서 조작하도록 되어 있고 필수적인 기능들만 별도의 버튼을 마련해 두고 있어서 디자인과 조작성 양쪽을 모두 고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버튼의 구성은 푸조 3008과 동일하지만 디자인과 조작방식에서 3008과 차별화를 하고 있는 부분은 부품 공유를 통한 원가절감이라는 측면에서는 불리한 요소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른 차를 타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준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부분이다.
실내 소재는 다소 딱딱한 플라스틱이 대시보드와 도어트림, 센터터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시각적인 디자인에 비해 고급스럽다는 느낌은 주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조수석 쪽 대시보드 상단에 디자인된 가죽 끈 형태의 장식은 다른 시트로엥 차들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C5 에어크로스의 경우 왼쪽에 한 줄만 있어서인지 다소 어색해 보인다. 가죽 끈 형태의 장식을 좌우 두 줄이 들어가는 형태로 디자인했으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오디오시스템은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하고 있어서 편의성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느끼기 어려웠고, 음질 자체도 무난한 편이어서 이 차의 차급을 고려했을 때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방향지시등을 작동했을 때 차량 외부의 방향지시등이 깜박이는 속도와 계기판 그래픽과 릴레이 소리가 서로 엇박자로 깜박인다는 점인데, 의식하지 않으면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부분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신경이 거슬릴 때가 있어서 제품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좀 더 세심한 조율이 필요할 것 같다.
실내 공간의 경우, 체격에서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데, 1열 거주성은 경쟁 모델과 비교하더라도 아쉽지 않은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2열의 경우 레그룸은 넉넉하다고 보기 어렵고 시트 쿠션도 짧은 편이어서 성인 남성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2열은 등받이 각도가 2단계로 조절되기는 하지만 뒤로 눕혔을 때 좀 더 각도가 뒤로 젖혀지면 좋을 것 같다.
실내공간 활용성에 있어서는 2열 시트의 경우 3분할된 시트를 각각 독립적으로 접고 펼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다양하게 실내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푸조 3008의 경우 1열 조수석 시트도 앞쪽으로 완전히 접을 수 있었던 반면 C5 에어크로스는 1열 조수석은 완전히 접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공간 활용성 측면에서는 3008 쪽이 좀 더 우위에 있다.
운전석에서 보이는 시야는 전방과 좌우의 시야는 시원하게 한 눈에 들어오는 반면 다소 작게 설계된 뒷유리 크기로 인해 후방 시야는 다소 답답하게 느껴진다.
부족함 없는 블루HDi 그리고 프렌치 핸들링
체격을 고려했을 때 130마력과 30.6kg.m에 불과한 블루HDi 1.5L 디젤 엔진은 부족하지 않을까라고 예상을 했다.
그러나 막상 주행을 시작하니 공차중량 1,585kg의 차체를 움직이기에는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았고, 특히 추월 가속 시에는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속을 이어 나가고 고속에서도 꾸준히 차를 밀어주는 정도의 힘을 내기 때문에 차급과 용도를 생각했을 때 적절한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정차 시에 시트와 운전대로 진동이 조금 올라오는 편이고 가속 시에도 디젤 엔진임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엔진 소리가 실내로 전해져 들어온다는 점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시승차의 경우 시승차로 5,000km 이상 주행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출고 직후부터 가혹한 조건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변속기는 EAT8 8단 자동변속기가 사용되었는데, 최근의 여느 토크컨버터식 자동변속기와 마찬가지로 일상 주행에서는 변속충격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변속속도라는 측면에서는 특히 수동 모드로 변속할 때는 한 박자 늦게 반응하는 점은 다소 아쉽게 느껴지지만 이 차를 운전하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수동 모드를 활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단점으로 꼽기는 어려울 것 같다.
브레이크의 경우 제동력 자체는 나무랄 데 없는 수준이지만, 브레이크의 답력이 초반에 몰려 있기 때문에 차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조금만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가 울컥거릴 정도로 강하게 제동이 된다는 점은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차량의 움직임 등에 있어서는 프랑스차 특유의 강점이 드러난다. 전륜구동임에도 불구하고 차의 앞부분이 코너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실력과 그에 맞게 리어도 곧잘 따라오는 특유의 핸들링 특성, 어느 정도 롤을 허용하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하중이 걸리면 잘 버텨내면서 돌아나가는 서스펜션의 세팅은 프랑스 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 할 수 있는데, C5 에어크로스에서도 비슷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다만, 형제차인 푸조 3008에 비해 서스펜션이 좀 더 소프트하게 튜닝된 탓인지 리어의 추종성이 3008 대비 한 박자 늦게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차의 거동이 전체적으로 좀 더 여유 있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그렇다고 일상적인 주행에서 크게 아쉽게 느껴지는 수준은 아니고 오히려 울퉁불퉁한 노면에서는 소프트한 서스펜션이 노면의 충격을 걸러 주기 때문에 패밀리 SUV임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목적에 적합한 세팅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성 넘치는 패밀리 SUV, 시트로엥 C5 에어크로스
오늘 시승한 시트로엥 C5 에어크로스는, 시트로엥 특유의 아기자기하면서도 독특한 디자인 요소들을 잘 녹여내고 있기 때문에 시트로엥을 좋아하는 소비자나 개성을 중시하는 소비자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내외관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또한 부드럽게 튜닝된 서스펜션으로 인해 편안한 승차감을 확보하면서도 프랑스 차 특유의 핸들링 감각도 살리고 있기 때문에 준준형 패밀리 SUV를 구매할 예정인 소비자라면 한 번쯤은 시승해 보고 구매리스트에 올려보아도 좋을 차량이다.
특히 개성있는 외모와 실내 공간 활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자녀를 둔 30~40대 여성 운전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차량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글: 강상구 변호사(법무법인 제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제하의 구성원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자동차 관련 다수의 기업자문 및 소송과 자동차부품 관련 다국적기업 및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 근무 등을 통해 축적한 자동차 산업 관련 폭넓은 법률실무 경험과,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을 취득하면서 얻게 된 자동차에 대한 기술적 지식을 바탕으로 [강변오토칼럼]과 [강변오토시승기]를 통해 자동차에 관한 법률문제 및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분석과 법률 해석 등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 및 정리: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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