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한중일 부엌비교조사 보고서 발간
제주 서귀포에 있는 도예가 박선희(51)씨 시댁에는 한 지붕 아래 부엌 두 개가 공존한다. ‘안거리(안채)’에는 시부모님이, ‘밖거리(바깥채)’엔 시할머니가 산다. 안거리 부엌은 박씨의 시어머니가, 밖거리 부엌은 시할머니가 쓴다. 두 부엌은 벽으로 분리돼 있다. 따로 사는 것도 아니고 버젓이 한 집에 사는데 왜 시어머니ㆍ며느리 부엌을 따로 뒀을까.
국립민속박물관은 7일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한국의 부엌’ 시리즈를 내놨다. 2018~2019년 한국ㆍ중국ㆍ일본 등 동아시아 3국 부엌을 살펴본 뒤 내놓은 비교 문화 조사 결과 보고서다. 제1권은 ‘한국의 부엌’, 2권은 ‘중국과 일본의 부엌’이다.
1권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한국 부엌 변화상을 조명했다. 경북 영주, 충남 홍성, 제주, 전남 순천 각 지역 부엌에다 최근 1인 가구 부엌, 공유 부엌 등 현대 부엌도 소개했다. 2권에는 베이징 등 중국 각 지역, 홋카이도 등 일본 각 지역 부엌을 분석했다.
◇노동의 효율성 노린 제주 부엌
‘한국의 부엌’에 따르면 안채를 생활공간으로, 바깥채를 사회적 공간 등으로 활용하는 육지와 달리 제주는 안거리와 밖거리를 각각 살림채로 구성해 세대별로 살았다.
아들이 결혼하면 부모는 아들 부부에게 안거리를 내주고 밖거리로 거처를 옮겼다. 한 울타리 안에 살면서도 각자의 살림에 간섭하지 않고 완전히 독립된 생활을 영위하는 게 제주의 전통적 방식이었다.
이런 독립성은 부엌의 분리로 이어졌다. 두 개의 부엌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각자 살면서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상징이다. 이는 혹독한 제주 자연환경 속에서 부부 중심의 핵가족 형태를 유지하는 게 노동의 관점에서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이 반영됐다. 자식이 결혼하면 부모와 자녀 부부가 집을 맞바꾸는 것 또한 가족 수를 감안한 실용주의다.
◇서구화로 비슷해졌지만 차이 간직한 한중일 부엌
한국의 전통 부엌은 바닥이 지면보다 낮다. 부뚜막에 불을 지피면 방 구들까지 데우는,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하는 한국 전통 가옥 구조 때문이다. 아궁이 위치가 방보다 낮아야 하니, 부엌 바닥도 땅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는 부엌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 동굴집 ‘야오둥’이 있다. 침대 형태의 구들인 ‘캉’과 연결된 부뚜막에서 취사를 한다. 야오둥 거주민이 “야오둥에는 부엌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일본 규수 지방에는 천연 증기 부뚜막 ‘스메’가 있다. 마을 곳곳에서 증기가 피어오르는 가고시마현 이부스키시 우나기 마을이 대표적이다. 지하에 묻은 관이 부뚜막에 연결되는 구조여서 사용료 걱정이 없다. 다만 지열 탓에 TV나 냉장고 등 전자 제품의 수명이 짧다는 게 단점이다.
그러나 한중일을 막론하고 전통 부엌은 감소 추세다. 서구화 때문이다. 이주홍 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현대 들어 가장 급변한 곳이 부엌”이라며 “가정주부만의 실외 공간에서 온 가족이 공유하는 실내 공간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다만 나라별 차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는 음식 조리법이나 저장법 등에서 차이가 나서다. 가령 일본은 생선 등을 구울 수 있도록 그릴이 달린 가스레인지를 많이 쓰고, 중국은 볶음요리가 많아 가스레인지 화력이 훨씬 강하다. 냉장고도 중국은 거실에 두지만 한국은 김치냉장고를 따로 두는 식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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