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 자유의 집에서 나란히 걸어나오며 환담하고 있다. 판문점=류효진 기자

2010년 초여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출장 때 풍성한 야채와 과일을 먹다가 동행했던 현지인에게 어디서 재배한 것인지 물었다. 그는 “농산물의 90% 이상을 이란에서 수입한다”며 “이란은 참 살기 좋은 땅”이라고 했다.

이란이 대륙성 기후로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4계절이 있는 나라라는 걸, 부끄럽지만 그 때 처음 알았다. 한반도의 7.5배 넓이인 이란에서 사막은 6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이란은 역사적으로 중동지역 대부분과 중앙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 북부까지 다스렸던 페르시아제국의 명맥을 잇고 있어 대제국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여기에 매장량 기준으로 각각 세계 4위인 원유와 세계 1위인 천연가스까지 가졌다. 누가 봐도 부러운 나라다.

미국이 이란의 실질적 2인자로 꼽혀온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을 전격 제거하면서 중동지역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미국과 이란은 철저히 대립해왔고, 이번 사태도 당연히 그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미국으로선 안정적인 원유 공급지로서의 중동을 상정하지만 이란이 매번 걸림돌이었을 테고, 이란은 ‘살기 좋은 땅’을 빼앗으려는 제국주의 침략자쯤으로 미국을 바라본다.

사실 미국과 이란 모두 자국의 입장에서 국내 정치적 목적이든 대외적 명분이든 지금의 갈등을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어느 쪽 주장이 진실에 가까운가와는 무관하게 승자의 논리가 관철되고 사후적으로 평가 받는다. 이른바 ‘힘의 논리’다. 한 나라가 제3국 땅에서 다른 나라의 2인자를 폭사시키는 게 합당하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물음은 실질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셈이다.

미국ㆍ이란 갈등의 와중에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북한 핵 문제의 해법에 닿는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톱다운’ 방식의 북핵 해법은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로 해를 넘겼다. 특히 연말께 북한 실무자의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에 2017년 전쟁위기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며 잔뜩 긴장해야 했다.

지금은 미국과 북한 간에 ‘말폭탄’조차 오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평온한 상황일 리는 없다. 오히려 북한이 다시 미국과의 대결모드로 전환했다고, 그래서 조만간 혹은 어느 순간에 ‘새 전략무기’를 선보일 것이라고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던 때가 불과 6개월 전인데 말이다.

현재로선 북미관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속단하기 어렵다. 미국은 대선과 탄핵이라는 정치현안으로 시끄럽고 이란 및 북한을 상대하는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이란 2인자에 대한 전격적인 드론 공습이 이런 골치 아픈 문제들을 뒷전으로 밀쳐내는 정치적 효과를 노린 것이란 지적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북한은 어떨까.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 한미동맹과 미중관계 등을 감안할 때 미국이 이란을 상대하는 것과는 당연히 다를 것이다. 그렇다고 ‘핀셋 공격’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 예상치 않은 어떤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사후적으로 이를 정당화하거나 봉합하는 정치적 과정은 어차피 진행될 것이다. 그러니 선험적으로 가능성 제로를 단언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을 수밖에.

문 대통령은 7일 신년사에서 “북미 대화의 성공을 위한 노력과 함께 남북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 절실하다”고 했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더욱 더 대화ㆍ협상을 통한 평화적 방법으로 북한을 마주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모두가 바라지 않는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그 절박함과 절실함에서 ‘희망은 힘이 세다’는 경구를 되새긴다.

양정대 국제부장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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