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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불꽃놀이와 종이빨대

입력
2020.01.0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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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보이는 것이 조금 달라졌고, 원한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들을 더 이상 원치 않게 되었다. 최소한 불꽃놀이라는 하나의 아름다움이 이제는 내 삶에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무언가’의 카테고리에 들어갔다. 사진은 47주년 국경일을 기념하기 위해 2018년 12월 두바이에서 진행된 불꽃놀이. 포토아이
그저 보이는 것이 조금 달라졌고, 원한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들을 더 이상 원치 않게 되었다. 최소한 불꽃놀이라는 하나의 아름다움이 이제는 내 삶에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무언가’의 카테고리에 들어갔다. 사진은 47주년 국경일을 기념하기 위해 2018년 12월 두바이에서 진행된 불꽃놀이. 포토아이

2019년 12월 31일 밤, 나는 두바이에 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기로 손꼽힌다는 두바이의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아주 전망 좋은 곳이었다. 작년 봄에 미리 예약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막상 작년 마지막 날, 나는 불꽃놀이를 보러 나가지 않았다. 이 여행을 예약한 날부터 연말 사이에, 내가 불꽃놀이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나는 사람들로 꽉 찬 큰길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고, 불꽃놀이를 올려다보며 ‘해피 뉴 이어’를 외쳤다. 불꽃은 아름다웠고 새해를 새 마음으로 시작한다는 설렘에 가슴이 벅찼다. 지금도 기꺼운 마음으로 돌아보는, 즐거운 기억이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여러 색으로 빛나다 사라지는 불꽃을 보며 사라지지 않고 흩어질 오염물질을 떠올리고, 폭죽 소리를 터무니없이 거대하고 불필요한 대기오염이 펑펑 발생하는 소리로 듣는다. 어차피 두바이는 올해도 폭죽을 엄청 터뜨렸고, 나는 이름도 정확히 모르는 다양한 대기오염 물질을 과다 배출했다. 내가 나가서 불꽃놀이를 보든 말든 환경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이 변화는 내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그저 보이는 것이 조금 달라졌고, 원한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들을 더는 원치 않게 되었다. 최소한 불꽃놀이라는 하나의 아름다움이 이제는 내 삶에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무언가’의 카테고리에 들어갔다. 굳이 불편한 것을 보고 싶지 않아 실내에 있었더니 졸려서 일찍 잤다. 그저 그렇게 되었다.

같은 카테고리에는 플라스틱 빨대가 있다. 나는 종이빨대를 증오했다. 과격한 표현이지만, 도무지 종이빨대 특유의 종이맛을 견딜 수 없었다. 더욱이 나는 셰이크나 스무디 계열의 찬 음료를 즐겨 마시고, 빨대를 잘근잘근 씹는 습관까지 있다(플라스틱 빨대가 종이 빨대로 바뀌기 전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습관이다).

처음 종이빨대가 도입되었을 때, 나는 어떤 음료수를 마시든 처음에는 종이맛에, 나중에는 씹어 입구가 막혀 빨대 기능을 상실한 빨대에 괴로워했고, 내가 평생 만들어내는 쓰레기를 다 합쳐도 미국 아무개 호텔 일주일 치 쓰레기도 안 될 텐데 어째서 반도인인 내가 종이 빨대를 물고 있어야 하냐고 끊임없이 한탄했다. 테이크아웃한 음료수를 사무실로 가지고 들어오자마자 플라스틱 빨대를 꽂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종이빨대를 좋아하지 않지만, 플라스틱 빨대 또한 잘 쓰지 않는다. 이 역시 대단한 결심이 따른 일은 아니었다. 선물 받은 다회용 스테인리스 빨대를 씹고 입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경험을 몇 번 반복한 후, 빨대 씹는 습관은 고쳤다. 아마 내가 평생 플라스틱 빨대를 다시는 쓰지 않아도, 내가 쓰지 않은 플라스틱 빨대의 양이라고 해 봐야 역시 미국 아무개 커피숍에서 사용되는 일주일 치 플라스틱 빨대에도 못 미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 부조리함을 불만스러워하면서도, 플라스틱 빨대를 더는 예전처럼 꼭 필요하고 편리한 물건으로 여기지 않는다. 플라스틱 빨대는 ‘불편한 무언가’의 카테고리에 들어갔다. 주면 쓰고, 필요하지 않으면 굳이 쓰지 않는다. 종이빨대를 받으면, 조금 안심한다.

나 같은 사람이 아주 많아지면 인류와 지구를 나누어 쓰는 동식물들에게 더 안전한 환경이 조성될지도 모른다. 다음 세대가 조금 더 건강한 미래를 향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솔직히 내게는 그런 거창한 대의가 없다. 딱히 각오도 없다. ‘불편한 무언가’의 카테고리로 넘어간 것들을 그저 보지 않고, 쓰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그래도 삶은 여전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을 보니, 역시 폭죽이나 빨대는 그렇게까지 필요하지는 않았나 보다, 하고 생각한다.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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