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갈등하는 틈을 타 궤멸 직전까지 갔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 고조로 중동 정세가 혼란에 빠지면서 미국 주도의 국제연합군은 대(對) IS 작전을 잠정 중단하고, 이라크 의회는 미군 철수를 요청하는 등 ‘IS 격퇴전’에 큰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군 공습으로 지난 3일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사망한 이후, 미국과 이란이 강대강 대치를 벌이는 상황은 IS에게 그야말로 ‘일거양득의 승리’라고 분석했다.
먼저 솔레이마니의 죽음 자체가 IS에게는 호재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최근까지도 이라크 정부군, 시아파 민병대와 함께 IS 격퇴 작전을 주도해온 인물이다. 미군과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민병대는 서로 공공연한 적대세력이지만, 역설적이게도 IS란 ‘공동의 적’을 격퇴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때때로 공조를 해왔다.
아울러 이란과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세력의 분노가 미국을 향하면서, 미군도 IS 격퇴전에 당장 쏟을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이라크ㆍ시리아에서 대(對) IS 작전을 벌여 온 미국 주도의 국제연합군은 5일 군 병력과 기지 보호에 주력하기 위해서 대 IS 작전을 멈춘다고 밝혔다. 이란이 “혹독한 보복”을 예고한 가운데, 미군을 보호하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IS 격퇴전의 양대 축이던 미군과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가 서로 싸우면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IS 부활을 억제하려던 노력에도 막대한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의 바버라 슬라빈 이란 전문 연구원은 “IS 지도자들은 지금 자신의 적들이 이라크에서 서로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틀림없이 희희낙락하고 있을 것”이라며 “IS가 다시 기지개를 켜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미군은 이라크로부터 ‘철수 압박’까지 받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라크 의회 긴급회의는 이날 “이라크 정부는 모든 외국 군대의 이라크 영토 내 주둔을 끝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그 군대가 우리의 영토와 영공, 영해를 어떤 이유에서든 사용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라크에는 현재 약 5200명의 미군 병력이 주둔해 있으며, 이들은 IS와 전쟁을 수행하는 이라크군을 훈련시키는 등 지원을 해왔다.
‘미군 철수 결의안’ 통과 소식에 미 국무부는 “이라크 의회의 표결에 실망했다”면서 재고를 요청했고, 한 술 더 떠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가 미군 철수를 요구할 경우 “대이란 제재가 우습게 보일 정도”로 강력한, “이전까지 본 적 없는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IS 전문가 샘 헬러 연구원은 NYT에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IS가 원해 온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ㆍ극이나 소설에서 가망 없어 보이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동원되는 힘이나 사건)”라면서 “미군이 (이라크에서) 즉각 철수하지 않아도 IS와의 싸움을 의미 있게 지속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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