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 판사들 모두 일어나 재심청구인과 가족에 고개 숙여
부산고법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
경찰의 고문을 견디다 못해 살인을 했다고 허위로 자백,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 2명에 대한 재심 결정이 내려졌다. 사건 발생 30년만이다.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들과 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부산고법 형사1부(재판장 김문관)는 6일 해당 사건의 재심을 청구한 장동익(60)씨와 최인철(57)씨에 대한 사건에서 청구인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판결에 대해 재심을 개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들을 수사한 수사관들과 검사에 의한 고문 등 가혹행위 및 허위공문서 작성이 다수 저질러 진 것이 법정에서의 개별 증거조사에서 증명됐다”면서 “유죄의 증거가 된 서류가 일부 허위로 작성되었거나 일부 증언이 위증임이 증명돼 재심 재판을 개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무려 28년 동안 재판 과정, 재판 외적으로 줄곧 고문을 당했다는 재심 청구인들의 주장이 실제 고문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구체적이고 생생하다”며 “당시 유치장을 같이 있던 다른 수감자들 역시 ‘재심 청구인들이 수사를 받고 나면 물에 젖어 오거나 고통을 호소했다’는 목격 상황을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재심 청구인이 당시 경찰에서의 자백을 번복하면서 검사에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검찰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점도 지적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부산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변 갈대밭에 차를 세우고 데이트를 하던 남녀가 납치돼 여성은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경찰이 범인을 잡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남았다가 1년 10개월 뒤 장씨, 최씨가 다른 사건에 휘말려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
이들은 해당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이후 지속적으로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물고문과 폭행 등을 견딜 수 없어 허위로 살인에 대한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이들의 ‘허위자백’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변호사로서 해당 사건을 맡아 이들의 항소심과 상고심을 진행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몇 년 전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변호사 35년 생활 중 가장 회한이 남는 사건”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법원은 1993년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두 사람은 복역한 지 21년 만인 2013년 모범수로 출소했다. 이후 이들은 행정심판에 이어 2017년 재심을 청구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4월 대검 과거사위원회가 고문으로 범인이 조작됐다고 발표하면서 재심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장씨와 최씨는 재심 요청 의견서를 다시 법원에 제출했고, 부산고법은 이를 받아들여 재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6차례의 심문을 진행한 뒤 이날 이 같은 재심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재심 개시결정을 내리면서 피해자들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김문관 재판장은 “이 사건과 같이 형사사법절차에서 공권력에 의한 조직적 인권 침해가 의심되는 경우 별도의 재심사유로 규정할 것인지 등을 입법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면서 “30년 가까운 기간에 걸친 고문 피해의 호소에 이제야 일부라도 응답하게 된 것에 사과의 예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배석 판사들을 좌석에서 모두 일어나게 한 뒤 재심 청구인들과 가족들을 향해 함께 고개를 숙였다.
부산=권경훈 기자 werth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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