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실패를 고발하고 인간성의 회복을 거의 종교적 열정으로 갈망했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3년 전 오늘 별세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2017)은 ‘무지 몽매’의 전근대에 대비해 ‘이성 합리’의 근대를 찬미하는 이들 사이에서, 고집스럽고도 심술궂게 근대의 실패의 징후를 탐구한 폴란드 태생의 사회학자다. 그는 근대(적 가치)의 신봉자들이 예외적 파탄이라며 경악하던 2차대전 홀로코스트를 두고 ‘홀로코스트야말로 근대적 산업화와 합리적 관료주의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장 끔찍한 산물’이라고, 다시 말해 근대의 실패(실수)가 아니라 실패한 근대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실패한 근대의 결정적 증거는 개인의 불행, 인간 존엄의 훼손 그 자체였다. 그는 과잉 공급-낭비-폐기의 시스템으로 구동되는 소비사회의 개인, 즉 소비자가 소비-폐기의 악순환을 통해 스스로 잠식하는 삶의 가치를 안타까워했고(‘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각자의 불행과 불평등을 스스로의 열등함 탓으로 생각하게 된 나머지 불평등의 메커니즘을 외면하고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 자체를 회피하는, 그렇게 살게끔 교육받은 노예적 삶을 성토했으며(‘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집단ㆍ다수의 대오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강박적으로 접속하는 SNS 속 가상적 관계들은 결코 우리가 바라는 바의 삶의 윤기 혹은 유대를 제공할 수 없고, 오히려 권력으로부터 사적인 영역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며 그 위에서 인간 상호 간의 유대와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근대가 내팽개친 인간 존엄을 회복하는 길임을 역설했다.(‘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그런 통찰이 그를 1990년대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의 개념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는 근대의 특징을 예측할 수 없는 현재와 미래의 시간성,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불안의 시대로 정의했다. “유동하는 근대의 시간 안에서는 영속적인 연계를 꿈꿀 수 없다. 어쩌다 느슨하게 연계되더라도 상황이 바뀌면 금세 풀어지고 만다.” 근대성과 합리성의 실패에 대한 해법으로 바우만은 새로운 집합주의와 동질성을 제안했다. 그는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복음이 SNS 안에 없듯이 만인과 만인이 투쟁하는 홉스의 세계나 시원의 자궁 속에도 없으며, 오직 인류가 서로의 손을 맞잡는 길 외에는 없다고 단언(‘레트로피아’)했다. 그가 3년 전 오늘, 그의 아내의 표현처럼 “영원 속으로 흘러갔다.(to liquid eternity.)”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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