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 국민 피해 우려” 신중론 고조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사망 사태가 정부의 호르무즈해협 파병 결정에 예상치 못한 변수로 등장했다. 미국과 이란 간 전면전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한국군이 파병될 경우 중동 내 국민 안전이 되레 위험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다.
외교부 당국자는 5일 기자들과 만나 “호루무즈해협에서 우리 선박들의 안전 항행과 항행의 자유 원칙에 우리 정부가 기여한다는 원칙은 그대로”라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여할지에 대해선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의 다른 소식통은 “달라진 상황에 따라 호르무즈해협 파병 결정도 신중하게 검토될 것”이라며 “최종 결정은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호르무즈 파병 결정은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졌다는 신중론이다.
정부는 앞서 지난달 12일 열린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호르무즈해협 인근에서 우리 국민과 선박을 보호하고 해양안보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기여하는 방안도 검토했다”며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에 일단 긍정적 시그널을 발신한 상태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이어진 미국의 호르무즈 파병 요청을 마냥 무시할 수 없었던 데다,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 과정에서 정부의 동맹 기여 카드 중 하나로 호르무즈 파병을 활용했던 셈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말 부산항을 출발, 이 달 중순 아덴만 해역에 도착하는 청해부대 31진 왕건함(4,400톤급)이 향후 호르무즈해협에 파병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솔레이마니 사령관 피살 뒤 이란이 미국을 향해 대대적인 보복을 예고하고, 미국도 병력을 증파하는 등 중동 지역 위기가 고조되면서 호르무즈 파병 문제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중동 내 시아파 세력의 본격적 대미 항쟁이 확산될 경우 미국 요청으로 호르무즈해협에 병력을 보낸 한국 역시 적성국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재외국민보호 차원에서도 파병 결정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4년 6월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 피랍돼 살해된 ‘김선일씨 사건’ 트라우마 때문이다. 당시 김씨를 납치한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는 한국의 이라크 파병을 김씨 납치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란의 대미 보복전이 미국 동맹국에 대한 대리전 양상까지 띨 경우 중동 내 재외국민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호르무즈 파병은 결국 한국이 미국과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보복 테러 가능성을 감안해 중동 내 재외국민들에 대한 경고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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