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에서 북한에 가장 우호적인 나라로 꼽히는 캄보디아가 달라지고 있다. 미국과의 급속한 관계 진전을 이룬 뒤 나타난 현상으로 대아세안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미 행정부의 움직임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5일 캄보디아 현지 소식통과 일본 교도(共同)통신에 따르면 유명 관광지 시엠레아프 소재 북한 파노라마박물관이 최근 완전 폐쇄됐다. 북한 화가들이 그린 앙코르와트 작품들을 소장한 곳으로 북한 직원들이 상주하며 운영해 왔다. 현지 소식통은 “북한 노동자 송환 기한에 맞춰 문을 닫은 것으로 안다”며 “캄보디아 사회에서 북한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결의안은 지난달 22일까지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를 자국에서 내보내도록 했다. 이에 맞춰 캄보디아 내 북한 식당 6곳도 모두 문을 닫았다.
3일에는 캄보디아 수사당국이 인터넷 관련 사업을 하는 북한인을 무더기 추방하기도 했다. 현지 경찰은 인터넷 사기 첩보를 입수해 북한인 16명을 구속한 뒤 이튿날 전격 추방을 결정했다. 현지 외교가 관계자는 “캄보디아 당국이 북한인을 체포한 것, 또 속전속결로 추방 조치를 내린 것 모두 매우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1970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은 북한으로 망명했고, 이후 본국으로 복귀한 후 북한인 경호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핵ㆍ미사일 위협에 맞서 아세안 차원에서 대북 결의안을 낼 때도 캄보디아는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렇게 50년 가까이 유지된 양국 우호관계에 금이 가고 있다는 얘기다.
상황은 갈수록 쪼그라드는 북한의 위상에 더해 캄보디아가 미국에 밀착하면서 크게 바뀌었다.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정부는 “미국은 캄보디아의 주권을 존중하며 정권 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서한을 공개한 바 있다. 미국은 유엔 대북제재를 이끌고 있다.
캄보디아를 지렛대 삼은 미국의 대북 압박 여파는 베트남에도 미치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베트남 당국에 붙잡혀 있던 탈북민 13명이 미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지난달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가 실패한 일부 탈북민의 영상이 공개되자 복수의 미 외교관들이 관여했다는 전언이다. 미 정부가 통상적인 탈북 사태에 개입한 것도 흔치 않은 일이라고 외교소식통은 전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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