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공습으로 이란 군부 실세 솔레이마니가 사망하면서 이란과 미국이 일촉즉발의 사태로 치닫고 있다. 이에 대해 당사국 정부와 시민의 반응은 엇갈리는 모습이다. 이란과 미국 정부가 ‘온 국민의 복수’와 ‘추가 공습’ 엄포로 맞서는 가운데 일부 중동 시민들은 전쟁에 대한 공포를 숨기지 않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도 트럼프 정부의 공습을 비판하는 반전 시위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애도·분노·공포 엇갈리는 이란과 이라크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이란의 국외 정보·군사 작전을 총괄하는 정권의 2인자였고, 함께 사망한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 이라크 인민동원군(시아파 준군사조직) 부사령관 역시 이라크 준군사조직의 2인자다. 이라크 정부의 공인을 받은 조직인 인민동원군 소속 군인들은 정규군과 같은 수준의 예우를 받기에 이란과 이라크는 이번 공습으로 군 수뇌부 최고위층 인사를 잃은 셈이다.
4일(현지시간) 이라크에서 엄수된 솔레이마니와 알무한디스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렸다. “내가 솔레이마니다!” “미국에 죽음을!” 등 애도와 분노의 함성이 뒤섞인 광장은 현지 주민들에게 닥친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샤흐나즈 밀라니니아(61)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현 정권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솔레이마니를 존경한다”고 밝혔다. 80년대 이라크 전쟁 당시 군에 입대한 솔레이마니는 전쟁 영웅으로서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추모 인파 속에서는 극단적인 주장도 이어졌다. 민병대 소속 모흐타바 하셰미(28)는 “미국은 우리의 보복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라크 카타이브 헤즈볼라 민병대는 이라크군이 미군 주둔지로부터 최소 1km 이상 떨어져 있을 것을 권고하며 물리적 보복을 예고했다. 이라크 의회 역시 국내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임시의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80년대 이란ㆍ이라크 전쟁을 겪어 반전 성향이 강한 연령층과 징집 대상인 청년 세대는 극단으로 치닫는 형국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다. 주로 솔레이마니의 반미, 적대 행보에 반대한 이들로, 한 학생은 “미국과 우리(이란) 주변국의 평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미국, 추가 파병 vs 반전 시위
트럼프 정부가 솔레이마니아에 대한 제거 작전을 공식 인정하자 미국 곳곳에서는 트럼프를 비판하는 반전 시위가 열렸다. 4일 워싱턴DC와 뉴욕시를 비롯해 시애틀, LA 등 미국 주요 도시마다 ‘No War’ ‘Stop Bombing Iraq’ 등의 피켓을 든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이란ㆍ이라크에 대한 군사 작전 중지를 촉구했다.
정치권 또한 대립이 더욱 첨예해졌다. 이번 공습을 “적절한 선제 조치”라고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을 향해 민주당은 ‘의회의 승인을 얻지 않은 불법적 공격’이라고 응수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민주당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동지역에 제82공수사단을 추가로 파병했다. 민간인을 모두 철수시키고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면서 국내외에서 전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외교적 존재감 노리는 독일·프랑스
한편, 독일과 프랑스는 공습 당사국의 혼란을 외교력 확대를 위한 기회로 삼고 있는 분위기다. 독일 외교부는 이란 당국과 직접 만나 갈등을 중재하겠다고 나섰고, 프랑스는 대통령이 직접 이라크 대통령과 접촉했다. 프랑스 정부는 4일 “지역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계속해서 정상 간 긴밀한 연락을 유지할 것”이라며 지역 강국인 UAE 왕세자와의 접촉 사실까지 밝히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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