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두 지식인이 충돌했다. 당의장을 지낸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창당의 주역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기억을 질타하면서다. 유 이사장이 연초 방송 토론회에서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4대 개혁입법을 처리하려 했지만 한나라당이 국회를 점거해 실패했다”는 취지로 발언한 데 대해, 이 이사장은 “거짓 주장”이라고 했다. 당시 야당이 국회를 점령하지 않았고 여야 협상은 순항했다는 게 이 이사장의 주장이다. 도리어 판을 깬 것은 국보법 폐지를 관철시키려던 ‘열린우리당 과격파’였다고 지적했다. 여야가 국보법 폐지 대신 독소조항을 없애는 정도의 개정 합의를 시도했지만 천정배 당시 원내대표 등 과격파가 합의를 무산시킨 탓에 개혁입법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당시를 기억하는 정치인 가운데는 이 이사장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가 많다. 박지원 의원은 “진보 정치에서 가장 잘못한 협상”이라면서 천정배 의원을 비롯한 당시 지도부를 수시로 비판한다. “당시 (개정)협상만 성공했어도 국보법을 무력화할 수 있었다”는 게 박 의원의 지론이다. 지금이야 국보법이 헛간의 쟁기처럼 녹슬고 있지만, 과거 반정부 인사를 무차별 처단하던 ‘찬양고무죄’가 법 제7조에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게 사실이다. 조급증에 걸린 열린우리당이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전략으로 개정입법을 걷어차는 바람에 유신의 잔재를 아직까지 청산하지 못한 셈이 됐다.
오래 전 장면을 떠올린 건 최근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엎치락뒤치락 여야 협상에서 느낀 소회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지역구 200석, 비례 100석’ 등의 파격적 제안이 나왔던 점을 감안하면, 지역구와 비례 의석을 그대로 유지하는 선거법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자기 밥그릇 챙기겠다는 기득권의 높은 벽’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국민의 표심을 왜곡하는 비례대표 제도를 수술하겠다던 정치권이 후퇴한 것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30석에 한해 50%의 연동률을 적용하는 제한적 연동형제도 도입을 두고 ‘누더기 입법’이라고 반발하는 상황을 십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점진적 발전을 확신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 낙담할 일이 아니다. ‘소선거구-단순다수대표’라는 87년체제의 일각을 허물었다는 거창한 평가나 중소정당의 의석 증가로 국회 다양성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정치권 셈법을 떠나, 적어도 표심 왜곡을 바로잡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작지 않다. 공정과 정의가 시대적 화두가 된 마당에, 30%안팎의 정당지지율로 과반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는 정치퇴행을 국민이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DNA를 물려받은 정부 여당이 조급증을 버리고 점진적(step by step) 전략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틀었다는 점을 평가하고 싶다. 과거 국보법 사태 때처럼 극단적 목표에 매달렸다면 거대 정당이 과잉 대표되는 현실을 조금도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표결을 거부한 채 국회 본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뒤 위성정당으로 변화한 정치지형을 돌파하려 하고 있지만, 기득권을 지키려는 꼼수에 유권자가 화답할지 모를 일이다.
공직자범죄수사처 도입 또한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물줄기를 돌리는 의미있는 전진이다. 공수처가 정권 유지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지만, 검찰권을 분산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거스를 순 없다. 유독 내부 비리에 관대한 검찰 조직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게 주권자인 국민의 요구이기도 하다. ‘견제와 균형’(checks & balances)의 원리에 비춰보더라도 검찰의 무소불위 기소권을 나누는 게 옳다. 검찰이 ‘인지 사건 즉시 통보’를 독소조항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선거법 개정처럼 시위를 떠난 화살의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정곤 사회부장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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