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ㆍ친이란 세력 “가혹한 보복” 대미항전 예고
러시아 “무모한 행동” ㆍ중국 “美 냉정 유지해야”
EU, ‘美 공습’ 언급 없이 “보복의 악순환 멈춰야”
미군의 공습으로 이란 군부의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부대(쿠드스군) 총사령관이 3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사망하면서 세계의 ‘화약고’ 중동을 둘러싼 정세가 긴박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란의 ‘실질적 2인자’로 꼽히는 솔레이마니의 폭사로 미국과 이란 사이의 전운이 고조되자, 전 세계에서는 역내 불안정 확산을 우려하며 확전 자제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겨냥한 공습은 '방어작전'이었다고 강조하며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이날 성명에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군은 미국의 해외 인력을 보호하기 위해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제거하는 단호한 방어전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란과 친이란 이슬람 시아파 세력은 미국에 대한 보복을 거론하며 반발했고, 러시아, 중국도 우려를 나타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날 "그(솔레이마니)의 순교는 그가 끊임없이 평생 헌신한 데 대한 신의 보상"이라며 "그가 흘린 순교의 피를 손에 묻힌 범죄자들에게 가혹한 보복이 기다리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 역내 친이란 무장조직들 역시 미국에 대한 비판에 동조했다. 이라크의 친이란 민병대(하시드 알사비ㆍPMF)는 미군에 대한 준비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하면서 대미항전을 촉구했다.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도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길’을 따르겠다고 밝혔으며,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지역 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미국의 범죄를 규탄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시리아도 미국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러시아 외무부 관계자는 이날 타스 통신에 "미사일 공격을 통한 솔레이마니 살해를 우리는 전(중동)지역의 긴장 고조를 초래할 모험주의적 행보로 평가한다"면서 미국의 공습을 무모한 행동이라고 규탄했다.
시리아 외무부 관계자는 자국 사나 통신에 "시리아는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로 이어진 미국의 기만적이고 범죄적인 공격을 강하게 비난한다"고 밝혔다. 터키 외무부 역시 성명을 통해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로 이어진 미군의 바그다드 공습은 역내 불안정과 위험성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은 양측의 행동을 모두 규탄하면서도, 특히 미국에 차분한 대응을 요청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는 관련국들, 특히 미국이 냉정을 유지하고 자제해 긴장이 더욱 고조되는 상황을 피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유럽연합(EU)은 미국과 이란 모두에 긴장 완화를 촉구하면서, 보다 ‘중립적’인 메시지를 내놓았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가 지난 몇 주에 걸쳐 이라크에서 목격한 폭력과 도발, 보복의 악순환은 중단돼야 한다"면서 "추가적인 긴장 고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셸 상임의장은 미국의 공습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이같이 말했다.
아멜리 드 몽샬랭 프랑스 외무부 유럽담당장관은 현지 방송에서 "자고 일어나 보니 더 위험한 세계를 목도하게 됐다"면서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보다 원하는 것은 안정과 긴장 완화"라고 말했다.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곧 중동의 당사국들과 접촉해 이 사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네 에릭센 쇠레이데 노르웨이 외무장관도 이날 성명을 통해 "나는 ‘모든 당사자’에 상황을 진정시키고 걷잡을 수없이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도록 도울 것을 촉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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