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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아들 통학로 막히고 소음 괴로워… 배려 없는 집회의 자유 옳은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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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아들 통학로 막히고 소음 괴로워… 배려 없는 집회의 자유 옳은건가요”

입력
2020.01.04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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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의 청와대 시위 허용에 눈물 쏟은 맹학교 학부모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에서 서울맹학교 학부모와 졸업생들이 ‘제발! 오지 마세요!!’를 적은 흰색 현수막을 들고 청와대로 향하는 보수단체의 행진을 막아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에서 서울맹학교 학부모와 졸업생들이 ‘제발! 오지 마세요!!’를 적은 흰색 현수막을 들고 청와대로 향하는 보수단체의 행진을 막아서고 있다. 연합뉴스

“맹아들은 평소 배운 길로만 다녀요. 그런데 그 길이 막히면 아이들은 도대체 어찌해야 되나요.”

서울맹학교 학부모 A씨는 지난달 말 청와대 앞 시위를 전면 금지한 경찰의 조치를 뒤집은 법원의 결정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재판부가 시각장애인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집회ㆍ시위의 자유만 앞세워 이런 판결을 내리진 않았을 거란 얘기다. A씨는 “당시 판사의 판결문을 듣다 하도 서러워서 함께 간 학부모 모두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3일 서울맹학교 학부모들에 따르면 이들의 가장 큰 불만은 누구도 절박함을 귀 담아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서울맹학교는 시각장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국립 특수학교다. 집회가 주로 이뤄지는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500m 가량 떨어져 있다. 청와대 앞을 점령한 대규모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는 날엔 당장 등ㆍ하교는 물론 학교 수업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

A씨는 “시각장애인은 보통 점자로만 공부한다고 생각하지만 처음엔 귀로 설명을 듣고 그 다음에 점자를 익히는 훈련을 해 주변 소음에 상당히 민감하다”며 “특히 듣기 방식으로 수능을 치르는 고3은 빨리 듣는 연습을 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시위를 하면 공부 자체를 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시위대에는 이런 사정을 얘기하며 제발 집회를 멈춰 달라고 거듭 읍소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라가 망해가는 데 무슨 자식 교육이냐” “정부에다 따져라” 같은 비아냥만 들어야 했다.

A씨는 지금은 방학이라 아이들 학습권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관 역할을 하는 곳은 사실상 맹학교뿐인데 서울에 맹학교는 단 두 곳에 불과하다”며 “맹아들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맹학교에 다니는데 이들에게 학교는 유일하게 마음 놓고 머무를 수 잇는 곳”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맹아들의 절박한 사정은 옆으로 제쳐두고 집회ㆍ시위의 자유만 내세울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범투본은 청와대 앞 시위를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서울맹학교 학부모들은 조만간 법원에 범투본, 민주노총 등을 대상으로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했다. A씨는 “우리는 보수와 진보가 아니라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며 “법원이 시각장애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여러 자료들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범투본 대표인 전광훈 목사 구속영장이 기각된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 목사가 구속됐다면 더 많은 시위대가 청와대 앞으로 몰려와 아이들이 방학 때도 제대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을 거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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