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일이 되어 전날 진행된 MBC 연예대상 관련 소식을 SNS로 확인하다가, 실시간으로 챙겨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안영미와 김숙, 장도연, 홍현희, 송은이, 박나래까지 뛰어난 여성 예능인들이 줄줄이 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대상 후보 여덟 명을 모두 남성 예능인으로 선정한 SBS,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아빠들에게 대상을 안긴 KBS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그 중 ‘라디오스타’로 뮤직&토크 부문 우수상을 받은 안영미는 말했다. “저도 선입견이 있어서 제가 방송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위축되고, 방송을 두려워했었는데 저한테 손 내밀어 주시고 키워 주시고 옷도 입혀 주시고 사람 만들어 주신 우리 송은이, 김숙 선배님께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버이 같은 분들입니다. 앞으로 송김안영미로 살고 싶습니다.”
언젠가부터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거의 보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고정으로 자리를 차지하거나, 예능인이 아닌데도 캐릭터가 독특하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는 대부분의 출연자가 남성이라는 걸 깨닫게 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시상식에 심드렁했던 것도 그 행사가 대체로 한 해 동안 한국 예능판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이었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10월 서울YWCA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5개 예능ㆍ오락 프로그램 속 출연자 전체 성비는 여성 29.5%(105명), 남성 70.5%(251명)로 남성이 여성보다 2배 이상 많이 등장했다고 한다. 주 진행자의 경우 여성이 25%(6명), 남성이 75%(18명)로 남성이 여성보다 3배 많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고정 출연자의 경우에도 남성이 약 2.6배 더 많이 등장했다.
MBC 연예대상에서 상을 받은 여성 예능인들의 소감에서도 이러한 불균형을 알 수 있었다. 홍현희는 데뷔 12년 만에 신인상을 받았고, 데뷔한 이후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하며 커리어를 쌓아온 장도연은 “MBC 연예대상에 올해 처음으로 초대받아서 왔고, 3사 연예대상에서 이렇게 상을 받은 것도 처음인데 방청석에서 수상자로 무대에 다섯 계단 올라오는 데까지 13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김숙은 “지난해에는 집에서 MBC 연예대상을 보고 있었다”며 25년 만에 처음으로 시상식에 와서 상을 받았다고 벅찬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성 예능인들이 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는 동안 카메라는 송은이의 얼굴을 크게, 자주 비췄다.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웃거나 때로는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 모든 여성들을 바라봤다. 녹화 전날 일방적인 하차 통보를 받은 김숙을 보며 ‘우리가 잘리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시작하고, 이후 ‘밥블레스유’를, ‘전지적 참견시점’을, 또 셀럽파이브를 만들거나 진행하거나 이끌며 여성 예능인들을 위한 판을 꾸준히 만들어온 송은이는 여성 예능인들의 소감이 어떤 뜻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2019년 MBC 연예대상은 자신의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는 방송계 바깥에서 판을 만들고, 결국 산업 안에서도 여성들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송은이가 예능판의 분위기와 여성들의 기세를 바꿔놓고 있으며 그것이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흐름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걸 명확하게 보여주는 자리였다.
지난해 이영자는 KBS 연예대상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였으며, MBC 연예대상에서는 17년 전 대상을 수상한 박경림 이후 역대 두 번째 여성 수상자였다. 믿기지 않는 기록이지만 사실이다. 그랬던 연예대상에서, 이영자가 박나래에게 대상을 건네며 포옹하던 모습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마다 이 장면을 떠올리며 힘을 내보려고 한다. 이것이 나의 올해 다짐이다.
황효진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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