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흑석9구역은 2018년 재개발 사업의 ‘격전지’였다. 4,400억원 규모 사업을 둘러싸고 롯데건설이 GS건설과 접전 끝에 시공사로 선정됐다. 승리 이유는 두 가지였다. 프리미엄 브랜드와 ‘인피니티 풀’을 약속한 것이다.
인피니티 풀은 물과 하늘이 이어진 것처럼 설계된 옥상 등의 야외 수영장을 뜻한다. 호화 리조트에나 있는 시설이 아파트에 들어선다는 점에서 조합원들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흑석9구역 조합원 A씨는 “처음에는 천장을 10㎝ 이상 올려준다는 GS건설이 유력해 보였지만, 인피니티 풀이 들어서면 가난한 동네라는 흑석동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귀띔했다.
아파트 내 커뮤니티 시설이 갈수록 화려해지고 있다. 과거 고가아파트 부대시설의 상징이 분수대와 어린이풀장 등이었다면, 최근은 인피니티 풀과 스카이라운지 등 호텔급 호화시설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커뮤니티 시설이 집값까지 좌우하는 요소로 떠오르면서, 건설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서울시는 재건축아파트의 과도한 설계변경을 금지하고 나섰을 정도다.
재건축 아파트의 호화 커뮤니티 시설은 2017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공사비 1조원의 서울 서초구 신반포4지구가 대표적이다. 수주에 성공한 GS건설은 공중 인피니티 풀을 설계안에 포함시켜 눈길을 끌었다. GS건설 관계자는 “브랜드 선호도도 높았지만, 특화 설계 약속이 조합원에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서울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등 스카이라운지를 설치한 아파트도 이후 조금씩 늘고 있다. 호텔처럼 조식 또은 중식 제공 서비스를 아파트에 도입한 경우도 있다.
커뮤니티 시설은 갈수록 더 고급화되는 추세다. 2008년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에 수영도 가능한 ‘미니 카약장’이 들어서자, 이후 수원과 거제 등 지방 아파트에도 미니폭포 등 수경시설이 도입됐다. 2018년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공동주택(아파트) 및 대규모점포 내 물놀이 수경시설은 1,356곳에 이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최근 커뮤니티 시설이 주택 가격을 결정하는 주 요인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며 “아파트가 게이티트 커뮤니티(폐쇄형 공동체)가 되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 진다.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 입찰에 나선 대림산업, 현대건설, GS건설은 저마다 고급 커뮤니티 시설을 포함한 특화설계안을 제시했다가 결국 입찰 무효 결정까지 받았다.
서울시는 앞으로 건설사의 과도한 설계변경을 금지한다는 방침이다. 도시정비법에 따르면 위치 변경 없이 부대시설 설치 규모를 확대하는 경우와 정비사업비 10% 범위 내 사업시행계획을 변경하는 경우 등에만 특화설계가 가능하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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