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서 ‘제1 노총’이 된 민주노총이 최근 조합원들에게 독자 정당 창당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하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과 정의당, 녹색당, 민중당 등 원ㆍ내외 진보정당들 간 관계 설정의 방향을 묻는 선다형(選多型) 설문조사에 ‘빠른 시일 내에 민주노총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항목을 가장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정책 연합이나 공조 등 기존 진보정당을 통한 대리 정치만으로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없다고 보는 민주노총 내 혁신정파의 뜻이 반영됐다는게 노동계의 해석이다.
□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이후 탄생한 통합진보당에 대해 2012년 배타적 지지를 철회한 민주노총은 내부 갈등으로 이후 10년 가까이 총선과 대선에서 지지할 단일 정당이나 단일 후보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독자 정당 창당 시도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노총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재야 인사인 장기표씨와 함께 녹색사민당을 창당했으나 비례대표 득표율 0.49%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은 뒤 조직 와해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이후 한국노총은 MB 지지(2007년), 문재인 지지(2017년) 등 보수정당과 자유주의 정당을 선택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 수면 아래서 꿈틀거리는 민주노총의 독자 정당 창당 움직임은 조직 확산의 여세를 몰아 본격적인 노동자 계급 정당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오랜 반공-권위주의 체제와 지역주의에 길들여진 노동자들의 보수성,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상ㆍ하층 노동자의 급속한 분절화라는 한국적 현실을 감안하면 그 실현은 쉽지 않아 보인다. 원내에서 가장 왼쪽으로 분류되는 정의당 주요 지지자들이 먹고살 만한 중산층 이상이라는 점이 이를 시사한다.
□ 그렇다고 노조의 독자 정당 추진이나 정치세력화 움직임이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세계 최고 수준인 북유럽의 복지제도 확대는 노조와 사민주의 정당 간 수십 년에 걸친 끈끈한 동맹이 원동력이 됐다. 반면 2000년대 이후 급격하게 진행된 한국의 복지제도 확대 과정에서 노조는 시민단체들보다 존재감이 없었다고 비판받는다. 무려 200만명에 달하는 조합원(양대 노총)과 노조의 막대한 재정적 자원이 입법의 키를 쥔 정당 정치와 좀 더 긴밀히 결합하면 복지제도 확대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민주노총당’을 창당하려는 이들의 속생각과 각오가 궁금하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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