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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화가 이중섭 짧은 행복 머물던 서귀포… 20여년 문화·예술이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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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화가 이중섭 짧은 행복 머물던 서귀포… 20여년 문화·예술이 자라났다

입력
2020.01.03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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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11>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문화거리

[저작권 한국일보]지난달 28일 서귀포시 이중섭문화거리 양쪽에 들어선 공방과 소품가게 등을 방문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김영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지난달 28일 서귀포시 이중섭문화거리 양쪽에 들어선 공방과 소품가게 등을 방문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김영헌 기자.

지난달 28일 제주 서귀포시 구 도심에 위치한 이중섭문화거리. 이중섭미술관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바로 옆 이 거리 입구에 들어서면 돌담에 이중섭의 얼굴이 새겨진 또 하나의 예술작품을 볼 수 있다. 이 아치 너머 쭉 뻗어있는 낮은 언덕길 양 옆엔 길쭉한 가로수들이 서있고, 그 뒤로 오래된 돌담집 등을 리모델링한 아기자기한 공방과 소품가게들이 모여있다. 카페와 음식점도 눈에 띈다. 복잡한 도심의 회색 풍경과 달리 차량 통행도 없고, 시끄러운 소음도 사라져 별천지에 온 것 같은 편안함에 젖어 든다. 다른 유명 거리처럼 북적거림이 없는 대신 고즈넉한 분위기가 발길을 끌어당긴다.

조금 걷다 보면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초가집 한 채가 생뚱맞게 등장한다. 조용하고 소박한 풍경의 이 초가집은 이중섭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피란생활을 했던 곳이다. 보기만 해도 한 폭의 그림이다. 옆으로 연결된 돌담길을 따라가면 2층 규모의 다소 작은 이중섭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초가집과 미술관 주변은 이렇게 이중섭공원으로 조성됐다.

[저작권 한국일보]지난달 28일 서귀포시 이중섭공원내에 복원된 이중섭 화가의 피란생활 시절 살았던 거주지를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김영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지난달 28일 서귀포시 이중섭공원내에 복원된 이중섭 화가의 피란생활 시절 살았던 거주지를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김영헌 기자.

이중섭거리의 명물인 아트마켓도 주말마다 열린다. 이날도 거리 중간 골목에 있는 서귀포문화예술디자인시장과, 야외 전시장에 위치한 서귀포예술시장에선 여러 작가들이 이중섭을 모티브로 완성한 그림과 예술품, 생활소품을 직접 판매하고 있었다. 360m에 이르는 이중섭거리는 이처럼 온통 ‘이중섭’과 연관돼 있다. 중간중간에 이중섭 작품을 모티브로 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고, 보도블록엔 이중섭의 은지화 작품이 새겨져 눈길을 사로잡았다. 은지화는 담뱃갑 속 은지에 송곳과 같은 날카로운 것으로 홈이 생기도록 선은 그어 그린 그림이다. 심지어 떡볶이집 이름조차 ‘중섭떡뽁이’일 정도다. 이중섭이란 이름 석자로 거리 전체가 도배되다시피 한 셈이다.

[저작권 한국일보]지난달 28일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에서 전시된 이중섭 화가의 대표 작품 '황소' 를 약 20배로 확대한 사진을 어린이 관람객이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김영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지난달 28일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에서 전시된 이중섭 화가의 대표 작품 '황소' 를 약 20배로 확대한 사진을 어린이 관람객이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김영헌 기자.

‘천재 화가’ 대향(大鄕) 이중섭(李仲燮·1916~1956)은 어느 예술가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평안남도 출신인 그의 짧은 생애는 전쟁과 피난, 사랑, 이별, 죽음 등 불운으로 점철됐다. 그나마 서귀포에서의 피란시절이 이중섭에겐 가족과 함께 했던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중섭이 서귀포에 체류한 기간은 11개월 정도로 짧았다. 4.70㎡(1.4평)의 좁은 방에 아내, 두 아들과 4명이 버겁게 살았다. 하지만 이중섭의 서귀포 시절은 작품세계에 중요한 전환점이자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 서귀포의 아름다운 풍광과 사랑하는 가족을 소재로 작품에 몰입했고, 이후에도 서귀포와 관련된 소재들은 이중섭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이날 이중섭문화거리를 가족들과 함께 찾은 임유진(서울ㆍ30)씨는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서울 경리단길처럼 번잡하지 않아서 걷기만 해도 힐링되는 기분”이라며 “교과서에서 봤던 작품들을 보면서 이중섭의 가족사랑이 느껴져 감동 받았다. 제주여행의 기억이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이중섭 문화거리 - 송정근 기자/2020-01-02(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이중섭 문화거리 - 송정근 기자/2020-01-02(한국일보)

△쇠락한 구도심에 문화와 예술을 입히다

이중섭거리는 유행을 쫓아 갑자기 생겨난 거리가 아니다. 20여년이란 긴 시간을 거쳐 탄생했다. 거리의 테마도 최근 여기 저기 나타난 다른 유명 거리와 사뭇 다르다. 먹거리나 볼거리가 넘치는 것과 달리 이곳은 이중섭거리만의 색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거리는 이중섭미술관이 중심이다. 많은 시민과 작가들이 미술관을 중심으로 20여년간 문화와 예술을 덧칠하면서 독특한 ‘이중섭 타운’으로 분위기를 굳혔다.

1995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미술의 해’로 지정하고, 이중섭의 예술활동을 기리기 위한 표석을 이중섭 거주지에 세우면서 이 곳의 역사가 시작됐다. 다음해 서귀포시는 고인의 예술혼을 기리며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화가의 이름을 따서 일대를 ‘이중섭 문화의 거리’로 지정했다. 시는 1997년부터 ‘이중섭 문화의 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해 이중섭 거주지를 매입한 후 초가지붕을 복원했고, 2003년엔 이중섭미술관을 개관했다. 미술관은 개관 당시 관람객이 2만6,000명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10배 이상 늘어 연간 26만명(2018년)이 찾고 있다. 관람객수는 전국 국공립미술관 68곳 중 6위이며, 작가 이름을 내건 작가미술관 35곳 중 2위를 기록하고 있다. 194㎡ 규모의 아담한 전시실과 이중섭 원화 작품이 45점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단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이중섭 그림의 대중적 인기와 삶 자체가 지닌 매력이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다.

[저작권 한국일보]지난달 28일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에 옥상에서 바라다 본 서귀포 바다 전경. 이중섭 화가의 '섭섬이 보이는 풍경'의 배경이다. 김영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지난달 28일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에 옥상에서 바라다 본 서귀포 바다 전경. 이중섭 화가의 '섭섬이 보이는 풍경'의 배경이다. 김영헌 기자.

미술관 개관 이후에는 이 일대를 중심으로 매년 이중섭예술제가 열려 각종 전시와 문화예술 공연이 늘기 시작했다. 이에 시는 2007년 4월부터 토요일마다 ‘樂ㆍ올래ㆍPLAY’란 이름의 거리 공연을 정기적으로 개최했고, 2008년 10월에는 더 많은 예술 작가들을 서귀포에 유치하기 위해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및 공예공방도 마련했다. 시는 2009년엔 이중섭 작품을 활용한 조명시설을 설치해 빛의 거리로 조성한 데 이어 2010년 낡은 목재보도와 차도를 걷어내고 인조 현무암으로 교체하는 등 거리 조성사업에 공을 들였다. 거리가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시민과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시는 2010년 4월 이중섭거리 전 구간을 토ㆍ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차 없는 거리’로 지정했다. 이후 주말마다 거리 전체가 공연장화 되고 작가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판매하는 아트마켓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2015년 다시 문을 연 서귀포관광극장도 이중섭거리 활성화에 한몫 하고 있다. 1963년 개관한 서귀포 최초의 극장으로, 영화 상영은 물론 크고 작은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하지만 화재로 운영이 중단돼 1993년 문을 닫은 이후 20여년간 방치되다 2015년 4월 시가 시설을 보완해 다시 문을 열었다. 담쟁이덩굴에 둘러싸인 건물 내부에는 아직도 세월의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지붕도 없어 하늘이 천장을 대신하는 노천공연장이지만 주말과 휴일마다 다양한 공연과 문화체험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이중섭거리와 이중섭미술관은 침체됐던 서귀포시 구도심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미술관 개관 이전의 주변 일대는 제대로 된 상가가 하나 없는 낙후된 주택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미술관 개관 후 거리를 찾는 사람이 크게 늘면서 지금은 상가들이 거리 양쪽에 빼곡히 들어서게 됐다. 이는 예술ㆍ문화가 관광과 연결될 경우 쇠락한 구도심 재생과 지역상권 복원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지난달 28일 서귀포시 이중섭문화거리 양쪽에 들어선 공방과 소품가게 등을 방문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김영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지난달 28일 서귀포시 이중섭문화거리 양쪽에 들어선 공방과 소품가게 등을 방문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김영헌 기자.

△정체된 거리, 주민 스스로 변화에 나선다

이중섭거리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 풀어야 할 과제들은 남아있다. 무엇보다 거리의 중심인 이중섭미술관의 변화다. 미술관은 협소한 공간으로 인해 전시실, 편의시설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이중섭이 머물렀다는 역사성을 갖고 버텨왔지만, 개관한 지 20여년이 지나도록 이중섭 대표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 등은 이름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지난달 28일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 1층 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이 이중섭 화가의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김영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지난달 28일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 1층 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이 이중섭 화가의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김영헌 기자.

또 이중섭거리가 서귀포매일올레시장과 함께 올레 6코스의 주요 방문지로 알려지면서 방문객들이 불어났지만 최근엔 사정이 좋지 않다. 3~4년전부터 관심이 줄면서 방문객이 감소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 여파로 대표적인 볼거리인 아트마켓에 참가하는 작가들이 작품 판매 부진을 배경으로 거리를 떠나고 있다. 어렵게 살린 이중섭거리가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작가들은 시가 앞장서 이중섭거리에 대한 홍보를 적극 강화하거나, 매일올레시장과 연계한 방문객 유치 대책이 절실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는 “이중섭거리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거리 구성원들도 대부분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라며 “현재 이중섭 거주지 주변 토지를 매입해 미술관 시설 확충에 나설 계획이며, 이 거리의 주인인 지역주민들과 협의하면서 주민 스스로가 거리 활성화에 참여할 방안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서귀포시 이중섭문화거리 인근 자구리해안에 설치된 정미진 작가의 '게와 아이들-그리다'. 이 작품은 이중섭이 가족을 그리워하면 종이에 그리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김영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서귀포시 이중섭문화거리 인근 자구리해안에 설치된 정미진 작가의 '게와 아이들-그리다'. 이 작품은 이중섭이 가족을 그리워하면 종이에 그리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김영헌 기자.

서귀포=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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