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철수… 제2 벵가지 사태 막아
트럼프 “이란 대가 치를 것” 협박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을 겨냥한 이라크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의 공격이 이틀 만에 끝났다. 2012년 ‘벵가지 악몽’을 떠올리던 미국은 사태가 인명 피해 없이 종료되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동 내 반미 기류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미-이란 간 갈등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1일(현지시간) APㆍAFP통신에 따르면 시아파 민병대 카타이브-헤즈볼라 조직원과 지지자 수백명은 이틀째 주바그다드 미대사관을 에워싸고 시위를 하다 이날 밤 전원 해산했다. 카타이브-헤즈볼라의 상위 조직인 ‘하시드 알사비’ 지도부의 철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민병대 관계자는 AFP에 “우리는 하시드 알사비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면서 “누구도 하지 못한 엄청난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정부군도 시위대가 미 대사관 인근에서 모두 물러났다고 확인했다.
이날 오전만 해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일부 시위대가 외벽을 타고 대사관 진입을 시도하는가 하면, 경비초소나 안내창구 등 외부에 노출된 시설에는 불을 질렀다. 또 대사관 안쪽으로 돌과 화염병을 던지면서 미군 철수와 대사관 폐쇄를 요구하는 반미 구호를 외쳤다. 미군은 이틀 동안 아파치 헬기 2대를 동원해 조명탄을 쏘며 야간을 틈탄 시위대 기습에 대비했다. 과격 시위 양상이 거세지면서 이날 오후엔 대사관 경비를 책임지는 미 해병대가 최루탄을 발사하기도 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나지 않았다.
이번 시위는 지난달 29일 미군이 카타이브-헤즈볼라 기지 5곳을 폭격하면서 촉발됐다. 공습으로 조직 간부ㆍ대원 25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다치자 민병대와 추종자 수천명이 31일 사망자 장례식을 치른 뒤 미 대사관 앞으로 몰려들었다. 미군은 앞서 27일 이라크 키르쿠크 주둔지에 로켓포 30여발이 떨어져 미국인 1명이 죽고 다수 군인이 부상하자 배후로 카타이브-헤즈볼라를 지목했다.
시위대의 자진 철수로 미국은 일단 제2의 벵가지 사태를 막을 수 있게 됐다. 벵가지 사태는 2012년 9월 중동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리비아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이 무슬림 모독을 이유로 북동부 벵가지 미 영사관을 공격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당시 리비아 주재 미 대사 등 미국인 4명이 숨진 일을 말한다.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외교 참사로 기록됐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전날 82공수사단 소속 병력 750명을 중동에 급파한 것도 재발 방지 차원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란과의 관계 악화는 물론, 중동 내 반미기류 확산 등 미국은 잃은 게 더 많아 보인다. 미 대사관은 방호벽으로 봉쇄된 그린존 안에 있어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지만 수천명의 시위대가 무사통과했다. 이라크 정부도 미군 공습을 주권 침해로 규정하고 사실상 시위대를 두둔하고 있다는 증거다. 알자지라방송은 “군경이 시위 둘째 날엔 검문소 통행 제한을 강화하긴 했으나 민병대 대원은 들어가도록 했다”라며 “이들이 시위대에 줄 보급품을 나르는 것도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이라크의) 우리 시설에서 인적ㆍ물적 피해가 발생하면 모두 이란이 책임져야 한다. 그들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 말은 경고가 아니고 협박이다”라며 이란을 시위 배후로 못박았다. 미국은 카타이브-헤즈볼라의 훈련과 무기 지원을 이란 혁명수비대가 담당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자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도 트위터로 “트럼프 당신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라며 트럼프 주장을 뻔뻔한 거짓말이라고 맞받았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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