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한 천재작가 박지리를 만난 건 내 영광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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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천재작가 박지리를 만난 건 내 영광이기도 하니까요”

입력
2020.01.02 04:40
수정
2020.01.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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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문학상’ 만드는 사계절 김태희 편집팀장

지난 30일 서울 신문로 한 카페에서 만난 사계절 출판사의 김태희 편집팀장이 ‘박지리문학상’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경에 놓은 책들은 박지리 작가가 6년간 쏟아냈던 작품들이다. 배우한 기자

지난 2016년, 856쪽에 잘하는 장편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하 ‘다윈 영’)을 남기고 천재작가 고(故) 박지리가 세상을 떠났다. 너무 이른 죽음에 안타까웠던 독자들의 아쉬움을 달랠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박 작가의 작품을 모두 출간했던 출판사 사계절은 1일 새해 들어 박 작가의 이름을 딴 ‘박지리문학상’을 만든다고 밝혔다. 10월쯤 단편 2편 혹은 경장편 1편을 응모받아 12월쯤 당선작을 내고 500만원의 상금을 줄 계획이다.

사계절로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청소년문학에 초점을 맞춘 ‘사계절문학상’을 운영해온 출판사로서는 처음 만드는 ‘본격 성인 문학상’이다. 문학상 이름도 그렇다. 김수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기존 문학상들은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의 이름을 내세웠다. 하지만 박지리문학상은 생전에는 크게 주목 받지 못한 작가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다. 문학상의 동력 자체가 부족할 수도 있다. 여기에다 박지리문학상을 널리 알리려면 어쩔 수 없이 ‘요절한 천재작가’임을 앞세워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죽음을 판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다. 이런 복합적 이유 때문에 문학상을 잘 운영해나갈 수 있을까,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럼에도 결국 박지리문학상을 만들고야 만 것은 온전히 박 작가의 작품이 지닌 힘 때문이다. 박 작가 작품 편집을 도맡았던 사계절의 김태희 편집팀장은 “박 작가의 작품들은 시대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고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며 “생전의 박 작가처럼 재능은 있지만 빛을 보지 못한 이들에게 상을 줘서 박 작가에게 빚진 마음을 갚겠다”고 말했다.

김 팀장의 확신에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문학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던 박 작가는 스물 다섯 살 나이에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그 뒤 6년간 7권의 책을 써내면서 완성도를 더 높여나갔다. 작가들 사이에서 “대체 박지리가 누구냐”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는 서른한 살의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3대에 걸쳐 내려온 악의 기원을 추적한 ‘다윈 영’이 출간된 바로 직후의 일이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뮤지컬의 한 장면. 서울예술단 제공

박 작가는 그냥 잊혀지지 않았다. 사후에 ‘다윈 영’으로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한국 청소년문학의 틀을 뛰어넘은 기념비적 작품”이라 극찬했다. 2018년에는 뮤지컬로도 제작됐다. 관객들 호응에 힘입어 이듬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다윈 영’만 그런 게 아니었다. 김 팀장은 박 작가 데뷔작 ‘합체’를 처음 본 순간부터 “천재가 나타났다”고 확신했다. 그 뒤 김 팀장의 주 업무는 ‘박지리 알리기’가 됐다. “그 다음 책 ‘양춘단 대학 탐방기’를 낼 때는 편집자 생활 20년 만에 처음으로 문학담당 기자들에게 일일이 손편지를 썼어요. 너무 좋은 작가니까 제발 좀 알아봐달라고요.”

제 57회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에서 김태희 팀장(맨 왼쪽)이 박지리 작가를 대신해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김 팀장에게 ‘박지리’란 그런 존재였기에, 작가가 떠났다고 그냥 놓아버릴 수가 없었다. 죽음 자체를 믿을 수 없어 1년 동안은 매일 같이 메일함을 뒤졌다. “생전에 앞에 나서는 걸 싫어했으니까, 어쩌면 죽은 척 하고 어디에선가 이름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한테만큼은 메일로 알려주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 뒤에도 끝없이 독자 리뷰를 검색했다. 트위터에 박지리 봇(정보성 계정)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글 청탁이 들어와도 박지리 이야기를 어떻게든 집어 넣었다.

가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한국출판문화상 수상 때, 뮤지컬 제작발표회 때도 제가 불려 다니니까 원망도 되더라고요. ‘네가 없으니 내가 이런 자리까지 나와야 하잖아’ 속으로 그랬어요. 그런데 박지리를 알릴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요. 편집자로서 박지리를 알게 됐으니까, 그게 내 영광이기도 하니까, 그런 마음으로 합니다.”

그 결론이 박지리문학상이었다. 작가가 떠난 뒤 관련된 일을 할 때는 과연 이게 작가가 원하는 일인지 끊임없이 기도로 물었다. 이제는 그냥 작가 역시 좋아하리라 믿기로 했다. 박지리란 이름이 각인돼 그의 작품이 더 오래, 더 널리 읽히기만 한다면야.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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