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청사 외벽 희망의 메시지
‘뜨거울수록 새하얀 입김, 그대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면’.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옆 서울도서관 외벽 ‘꿈새김판’에 새로 내걸린 글이다.
서울시 등 지자체들이 새해 들어 ‘불조심’ ‘안전운전 생활화’ 같은 표어 대신 시민의 감수성을 듬뿍 담은 감성글을 내걸고 있다. 과거 일방적 정보 전달이 아닌 소통과 힐링이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생긴 변화다.
문구에 담긴 온기는 겨울철 뜨끈한 국밥처럼 시민에게도 전해졌다. 꿈새김판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다 만난 김은영(36)씨는 “길을 가다 무심결에 시청을 쳐다봤는데 문구가 눈에 들어오더라”며 “추워 웅크리고 있었는데 온몸이 따뜻해진 기분”이라고 말하며 쑥스럽게 웃었다.
이 문구는 취업준비생인 채슬미(24)씨가 썼다. ‘내가 혹은 당신이 얼마나 뜨겁고 열심히 사는 사람인지를 알려주고 싶어’ 서울시가 진행한 꿈새김판 문구 공모전에 응시해 당선됐다. 채씨는 “몇 년 전 종강 후 교수님에게서 ‘주변에 따뜻한 사람이 돼라’는 메일을 받았다”며 “내 성공에만 집착해 주변에 따뜻하게 대한 적이 없는 날 돌아보게 됐고 누군가에게 당신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을 문구에 담았다”라고 말했다.
새해 들어 각 지역 도심 전광판 풍경은 확 바뀌었다. 정보나 주의사항 전달에서 희망과 위로를 주는 메시지들로 전광판을 채우기 시작했다. 부산시청 외벽엔 ‘언 땅 밑에서 부지런히 싹을 빚는 겨울나무의 꿈’이란 문구가 걸려 있었다. 시민의 창작 문구였다. 이 문구를 쓴 정시영 씨는 “겨울이 되면 나무들이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 땅 밑 어딘가에서 봄에 틔울 새싹을 빚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이런 겨울나무의 모습이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이 문구를 썼다”고 말했다.
수원시청의 희망글판엔 ‘등어리 어루만져 도닥거리는 다사로와라, 겨울햇볕’이란 문구가 새해를 밝혔다. 허영자 시인의 ‘겨울햇볕’에서 발췌한 문구다. 대부분 ‘나’에 집중해 자존감을 찾으려는 내용이었다. 김수현의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 지난해 출판가에서 ‘나를 위한 삶’을 주제로 한 책이 큰 사랑을 받았던 유행이 반영됐다.
서울 관악구 삼성중학교 인근 골목길엔 해가 떨어지자 ‘너의 존재 그 자체가 아름다워’란 문구가 길 위에 빛났다. 관악구가 조명에 필름을 붙여 밤길 주민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해 벌인 디자인 조명 사업이다. 박준희 구청장은 “구민들이 지친 하루를 위로 받고 내일의 희망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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