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경보기 없는 노인 집 잇단 불, 이웃 도움 못 받아 사망
감지기 의무화 불구 보급률 49%... “독거노인 감지기 보급을”
#1. 지난 30일 아침 7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독거노인 A(75)씨가 주택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안방 온열기구에서 불이 났는데, 제때 이를 알아채지 못한 A씨가 연기를 들이마셔 변을 당한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정한다. A씨 집엔 불이 났을 때 경보음을 울리는 화재 감지기 같은 건 없었다. 이 동네에 사는 80대 여성 C씨는 “이 동네는 낡은 단층 주택이 밀집돼 있고 거주민들도 노인들이 많아 만약 소방차가 늦게 왔다면 불이 난 걸 몰라 피해가 더 커졌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2. 지난 29일 서울 관악구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서 살던 독거노인 B(68)씨도 오전 11시쯤 방안에서 난 불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B씨가 살던 곳은 10㎡(3평) 규모의 원룸이었지만, 몸이 불편한 B씨는 제때 탈출하지 못했다. 더구나 B씨가 살던 곳 역시 화재 감지기가 설치돼 있지 않아 주변 이웃들도 불이 난 걸 바로 알아채지 못했고 결국 화재 신고도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 D씨 집은 내부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불에 탔다.
최근 감지기가 없는 집에서 노인이 화재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잇따르면서 노인들이 화재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혼자 살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화재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감지기만 설치해도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재난 약자인 노년층에 대해 감지기 보급을 늘리는 식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주택 화재로 인한 사망자 2명 중 1명이 60대 이상 고령층일 만큼 화재는 노인들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7년(2012∼2018년)간 주택 화재로 인한 사망자 수는 1,037명으로 60세 이상이 516명으로 49.8%에 달한다. 동작구 지역주민센터 관계자는 “형편이 안 좋은 노인들은 겨울철 보일러비 아낀다고 난로와 같은 온열기구에 많이 의지하는데 아무래도 불이 나도 이를 잘 인지를 못해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센터 관계자는 “재개발 지역엔 사실상 노인 거주비율이 높은데 이런 집들은 소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특히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해결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감지기만 설치해도 화재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실상 감지기가 노인들의 생사를 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동작소방서 관계자도 “만약 경보기가 있었더라면 훨씬 빨리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정부도 3년 전 관련 법을 고쳐 일반주택에도 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했다. 미국의 경우 감지기 보급률이 2000년 초반에 이미 90%를 넘어섰지만,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49%에 그친다. 감지기 가격이 1만원 수준에 불과한데, 감지기 설치엔 유독 소극적이다.
전문가들은 독거노인처럼 형편이 어려운 노인에 대해선 감지기를 보급해주는 식의 정책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단 화재가 나면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데 감지기만 설치해도 피해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어서다. 광창식 소방청 119생활안전과 계장은 “재난 약자 가구 우선으로 감지기를 지자체에서 보급하긴 하지만 지역마다 차이가 크다”며 “보급 기준을 세세히 나눠 형편 어려운 노인층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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