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우리가 간다] <1> 남자 펜싱 사브르 구본길 김정환 오상욱
남자 펜싱 사브르 삼총사 구본길과, 김정환, 오상욱(왼쪽부터) 진천=고영권 기자

검객 3명이 칼끝을 모았다. 2020 도쿄올림픽을 위해 벼르고 벼른 검이다.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그 꿈을 함께 이루자고 뜻을 모았다. 남자 펜싱 사브르 세계 최강 김정환(37) 구본길(31), 오상욱(24)이 바로 그 삼총사다.

대한민국 펜싱은 7월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에서 단체전과 개인전 동시 석권을 노린다. 이를 위해 ‘펜싱 황제’ 구본길과 맏형 김정환, 그리고 현 세계랭킹 1위인 ‘꽃미남 검객’ 오상욱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 4월 국가별 올림픽 포인트를 합산해야 최종 진출국가가 가려지지만, 현재까지 각국의 포인트 상황을 고려할 때 이변이 없다면 올림픽 진출은 사실상 확정적이다. “메달 색깔이 관건일 뿐”이라는 게 펜싱계 안팎의 전망이다.

실제로 최근 3년 넘도록 이들 삼총사 앞에 적수는 없었다. 2015년 ‘막내’ 오상욱이 합류한 이후 2016~17시즌부터 팀 랭킹 세계 1위를 놓지 않고 있다. 2017년 독일 라이프치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다. 2017~18시즌에는 4차례의 월드컵에서 3차례나 우승했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는 사브르 단체전이 정식 종목에서 제외돼 함께 못 뛰었지만, 도쿄에서는 반드시 금메달을 획득해 2012년 런던의 영광을 이어간다는 다짐이다.

지난달 30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사브르 삼총사는 “지난 4년 모든 대회들은 도쿄올림픽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부담은 크지만 우리는 충분히 이겨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자 사브르 최고 전성기다.

구본길(이하 구) “2012 런던올림픽에서의 ‘깜짝 금메달’이 시작이었다. 이후 다른 나라의 인정을 받았고, 국내에서도 저변이 확대되면서 (오)상욱이나 (김)준호, (하)한솔 같은 좋은 후배들이 많이 배출됐다”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는 뜻인가.

김정환(이하 김) “그렇다. 런던 올림픽 당시 멤버가 원우영 오은석 김정환 구본길 등 4명이었다. 이후 원ㆍ오 선배가 대표팀을 은퇴했지만, 이후 (구)본길이가 개인 랭킹 1위를 거의 독식하며 팀을 이끌었고 준호와 한솔이, 그리고 상욱이까지 선배들의 빈 자리를 잘 메웠다”

-오랜 기간 세계 최강 자리를 지켜낸 비결은.

김 “한 마디로 ‘발 펜싱’이었다. 풋워크를 말한다. 펜싱 강국 유럽이 손기술 위주의 강한 펜싱이라면, 우리는 발 놀림 위주의 빠른 펜싱이었다. 이런 펜싱 스타일이 그간 국제 대회에서 잘 먹혔다.

-도쿄에서도 ‘발 펜싱’인가.

김 “아니다. 발 펜싱은 2012년을 전후로 집중했던 것이다. 이제는 발 펜싱만으로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도 강한 손기술과 유연성, 그리고 멘탈 관리 능력까지 종합적으로 훈련해 왔다. 과거 발 펜싱보다 더 진전됐다.”

-도쿄올림픽 메달 가능성은.

김 “펜싱은 워낙 예민하고 상대적인 스포츠다. 1,000분의 1초, 소위 ‘한 끗 차이’로 승패가 갈린다. 변수도 많고 절대 강자는 없다. 최근 결승에서 자주 만나는 팀은 이탈리아다. 헝가리와 독일 등 전통적으로 유럽 국가들이 강하다. 긴장된 무대에서 우승을 다툰다면 승리를 장담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팀을 만나건 어려운 가운데서도 거의 이겼다. 준비를 잘 한다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본다”

-구본길은 요즘 랭킹이 떨어졌는데.

구 ”결혼을 해서 그런가(웃음).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개인 랭킹 1위였다가 지난해 조금 처졌다. 이제 다시 올라가는 중이다. 지금의 순위 변동은 올림픽을 앞둔 하나의 준비과정이라 생각한다. 기량이 떨어졌다는 느낌은 없기에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지난해 7월 2019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에서 우승하면서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오상욱은 뛰어난 실력뿐만 아니라 훤칠한 키(192㎝)와 빼어난 외모로 펜싱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나이는 팀 내에서 가장 어리지만, 단체전 마지막 주자로 나서 확실한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고 있던 경기를 오상욱이 막판에 뒤집은 경기도 여럿이다.

-단체전 마지막 주자는 항상 오상욱이다.

오 “포지션마다 중요한 역할이 있다. 선봉 본길이 형은 기선을 제압해야 하고 중간 정환이 형은 좋은 분위기를 이어줘야 한다. 나는 순서상 마지막일 뿐이다. 오히려 나는 내 경기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앞서 경기를 끝낸 형들은 피스트 밖에서도 막내인 내 심리상태와 분위기를 체크하고 컨트롤해 준다. 형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개인 첫 올림픽인데 부담스럽지 않나.

오 “아직 실감이 잘 안 난다. 늘 뛰던 시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덤덤하다.”

구 “상욱이는 마지막 주자로 적합한 성격이다. 예전에 국제 경기에 출전했다가 귀국길 공항에서 장난으로 상욱이 여권을 몰래 감춘 적이 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상욱이는 천하 태평이더라. 오히려 장난친 사람이 답답할 정도다. 멘탈이 정말 강하다.”(웃음)

김 “맞다. 같이 늦잠 자다 훈련에 지각한 적이 있다. 나는 후다닥 준비해서 뛰쳐나오기 급급했는데, 상욱이는 이까지 닦고 자기 할 일 다 하고 나오더라. 놀라울 정도였다.”(웃음)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판이하다. 고향도 서울(김정환), 경상도(구본길), 충청도(오상욱)로 제각각이다. 그런데도 삼총사는 최고의 팀워크를 이뤄내고 있다.

-조합이 잘 맞는 이유는.

김 “세 명이 제각각이어서 더 잘 맞는다. 프랑스는 촘촘한 세심형 펜싱이고 러시아는 힘으로 찍어 누르는 파워형이다. 출전 선수 3명의 스타일이 모두 비슷하다는 건 ‘예측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다르다. 본길이는 공격적이고 상욱이는 느긋하다. 외국 선수들도 ‘한국 팀은 스타일을 파악하기 힘들다’고 털어 놓는다.”

오 “어릴 적부터 정환, 본길 형이 롤모델이어서 믿고 따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합이 잘 맞는 것 같다. 런던올림픽 때 학생이었는데, 형들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사브르의 독보적 존재들이지 않나.”

구 “이것 봐라. 상욱이 눈치가 많이 늘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뭘 원하는지 다 안다. 정말 조합이 잘 맞는다.” (웃음)

-예민한 스포츠다. 징크스나 루틴이 있을 텐데.

구 “경기 당일엔 음식을 먹지 않는다. 물도 최대한 자제한다.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김 “승리를 부르는 나만의 특정 속옷과 티셔츠가 있다. 경기에 지고 나면 항상 다른 속옷을 입고 있더라.”

오 “본길이 형과 반대로 시합 직전까지 계속 먹는다. 예전 경기 직전 선수 이름이 불려질 때까지도 햄버거를 먹고 있다 코치님께 혼나기도 했다. 그래서 음식을 안 먹은 적이 있는데 그날 경기에서 졌다. 난 먹어야 한다.” (웃음)

올림픽 개인전에서 피하고 싶은 선수로 “무조건 한국 선수”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구본길은 “피스트에 쏟아낸 땀과 눈물이 어느 정도였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 “그런 상황이 오면 누가 이기든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아군만 만나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진천=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이주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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