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1일 '당의 령도(영도)따라 자력부강의 한길로 줄달음쳐 온 자랑찬 한 해'라는 제목으로 한 해를 결산하는 사진 21장을 공개했다. 그 중 평양 대동강변 주체사상탑의 일몰 사진은 단연 눈길을 끌었다. 김일성광장의 인민대학습당 위로 지는 태양이 왠지 어색해 보였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진은 명백한 ‘합성’ 사진이다. 구글맵과 확대 사진을 통해 분석해 보았다.
합성이 강하게 의심되는 첫 번째 포인트는 주체사상탑과 뒤편에 보이는 인민대학습당 등 배경의 비현실성이다. 위 지도상으로 주체사상탑에서 인민대학습당까지는 1km가 훨씬 넘는 거리다. 사진에 나타난 구도처럼 촬영하기 위해선 초망원렌즈를 사용해야 하는데 초점 범위가 짧은 망원렌즈의 특성상 주체사상탑과 인민대학습당을 모두 선명하게 촬영할 수 없다. 즉, 둘 중 하나는 흐릿하게 찍히게 마련이지만 이 사진은 앞쪽 피사체와 뒤쪽 배경의 초점이 다 선명하다.
두 번째 합성 포인트는 태양 이미지다. 사진 설명이 구체적이지 않아 해당 사진이 일출 장면인지 일몰인지 알 수는 없으나 구글맵에서 확인된 주체사상탑의 일출 및 일몰 방향은 사진과 전혀 다르다. 사진 상으로 볼 때 태양이 인민대학습당 위, 즉 북서쪽으로 지거나 뜨고 있지만 실제 평양의 12월 일출은 지도상의 남서(2), 일몰은 남동(3) 방향이다. 다시 말해 주체사상탑에서 인민대학습당 쪽으로는 일출도 일몰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주체사상탑과 김일성광장이 지닌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는 해도 욕심이 너무 과했다.
태양 이미지가 합성됐다는 의심은 주체사상탑과 태양이 겹치는 지점에서 더 확실시 된다. 아래 확대 사진을 자세히 보면 태양 및 구름 이미지의 잔상이 탑의 일부인 망치와 촛불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레이어 합성을 하면서 정교함을 놓친 탓이다.
인민대학습당(위 사진 노란색 원)보다 훨씬 큰 태양의 크기 또한 비현실적이다. 실제 태양이 저 방향에 위치해 있다 하더라도 사진상으로 나타난 정도의 크기로 찍히려면 초망원 렌즈를 사용해야 한다. 사진상으로 나타난 주체사상탑과 인민대학습당의 크기를 감안할 때 초망원렌즈를 쓰지 않았으므로 태양의 크기는 훨씬 더 작아져야 맞다.
북한은 종종 체제 선전을 위해 사진을 인위적으로 합성해 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기술적 정교함과 비현실적인 묘사로 합성 사실이 탄로나곤 했다. 대표적인 예가 2016년 2월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광명성 4호’ 발사에 기여한 관계자들과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사진 위쪽 중앙에서 펄럭이는 인공기의 방향을 다른 깃발들의 방향과 정반대로 묘사한 것인데, 뒤집힌 채 펄럭이는 중앙 인공기를 합성으로 바로 잡으려 한 시도로 보인다. 2017년 공개한 ‘화성 14호’ 사진 역시 과도한 합성으로 비현실 세계를 떠올리게 한 사례다.
어쨌든 과거에 비하면 노동신문의 이번 송년호 사진은 여러 면에서 일취월장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합성 기술의 정교함과 숙련도, 사진가의 최소한의 양심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보았다.
그래서 제 점수는요... ‘100점 만점에 60점’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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