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연극평론가 구히서(본명 구희서) 선생이 31일 별세했다. 향년 80세. 연극인들은 고인이 수년 전 건강이 악화돼 자택에서 투병해 왔다고 전했다.
고인은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등에서 일하다 1970년 스물아홉 나이에 늦깎이로 신문사에 입사했다. 이후 1994년까지 24년간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 문화부에서 연극 전문 기자로 활동하며 필명을 날렸다. 현업에서 퇴직한 이후에도 1994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을 지내며 활발하게 저술 활동을 했다.
고인은 ‘저널리즘 연극 비평’을 구축한 평론가로 평가받는다. 신문 기자로 일하며 발로 뛴 현장 경험과 풍부한 정보를 평론에 담아내 연극 평론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99년 출간된 평론집 ‘연극읽기’ 3부작은 그 결실로, 1989년부터 1993년까지 고인이 썼던 연극 평론 200여편이 수록돼 있다.
고인이 1970~80년대 몸담았던 서울극평가그룹은 한국연극평론가협회의 전신으로, 공연 예술 분야 최초의 평단이었다. 김미도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은 “고인은 기자이자 평론가로 가장 많은 연극을 관람하고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긴 분”이라며 “개별 평론 작업을 뛰어넘어 평단을 결성해 후진들에게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업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고인은 연극뿐 아니라 전통 예술과 무용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한국의 명무’와 ‘무대 위의 얼굴’, 10부작 ‘춤과 그 사람’ 등 전통 예술 관련 저작물을 여럿 출간했고, ‘맨발의 이사도라’ 등을 번역했다.
또한 1970년대부터 틈틈이 해외 희곡 번역에도 매진, 연극 ‘아일랜드’와 ‘시즈위 밴지는 죽었다’ ‘이듬해 이맘 때’ ‘황금 연못’ ‘마지막 한 잔을 위하여’ ‘쿠크 박사의 정원’ 등을 국내에 소개했다. 연극 ‘왕자 호동’과 무용 ‘무천의 아침’, 무용극 ‘물길 땅길 하늘길’, 칸타타 ‘백범 김구’ 등의 대본은 직접 쓰기도 했다. 김혜란 명창의 ‘경서도 소리 작창집’에는 작시로 참여하고, 연극 ‘불’과 ‘허생전’ 등에서 의상 디자이너로 나서기도 했다.
고인의 이름을 딴 히서연극상은 연극과 연극인에 대한 고인의 사랑이 얼마나 남달랐는지 보여준다. 1996년 시작된 히서연극상은 고인이 단독으로 심사해 수상자를 결정하는 독특한 상이다. 그럼에도 신뢰받는 평론가인 고인이 직접 현장을 구석구석 누비면서 찾아낸 원석 같은 배우에게 주는 상이라는 점에서 권위를 인정받았다.
이 때문에 연극인들에게 고인은 ‘연극계 대모’로 통했다. 배우 김성녀씨는 “고인은 기자라기보다 연극인이었고, 또한 연극인들의 대모이자 동지, 후원자였다”며 “회초리를 드는 평이든 칭찬하는 평이든, 언제나 정이 듬뿍 느껴지는 글로 가난한 연극인들을 격려했고 무대 뒤에선 남모르게 많이 베풀어 주셨다”고 회고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데뷔 무대부터 70세가 된 지금까지 내 성장을 한결같이 지켜봐 준 분이라 더욱 각별했다”며 “나를 지탱해 준 커다란 존재가 사라진 느낌”이라고 애통해했다.
지난 2008년 연극인들은 ‘구히서 선생 칠순 기념 공연’을 고인에게 헌정했다. 10년 뒤에는 ‘구히서 팔순 헌정 공연’을 올리자는 이야기도 오갔다. 평론가이기 전에 누구보다 연극을 사랑했던 연극인이었던 고인은 팔순 헌정 공연을 보지 못하고 아쉽게 눈을 감았다. 빈소는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층 6호실, 발인은 1월 2일 오전 9시.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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