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전만 해도 저는 서빙하는 사람이었는데, 다들 저 보러 온 거 맞나요?”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다시 마이크를 잡게 된 ‘탑골 GD’ 혹은 ‘시간 여행자’ 가수 양준일(51). 31일 서울 군자동 세종대 대양홀에서 첫 팬미팅을 열기 직전 기자들 앞에서 서서 내뱉은 첫 마디였다. 간담회 내내 양준일이 거듭 쓴 단어는 ‘쇼크(충격)’였다. 처절하게 외면당했던 1990년대, 그리고 매서운 한파를 뚫고 몰려드는 팬들이 있는 2019년 사이의 간극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면 기적적이긴 하다. 1990년대 ‘튀지만 곧 잊혀진 가수’에 불과했던 그는 옛 음악방송을 틀어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1990년대 지드래곤’이란 뜻의 ‘탑골 GD’로 다시 불려 나왔다. 이어 한 예능 방송을 통해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양준일은 잊혀진 뒤의 삶을 “재방송 같은 하루하루였다”고 한 적 있다. 떠들썩한 기자간담회를 열고 팬들을 만난 이날은, 이제 양준일의 삶이 생방송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양준일은 다시 한국 내 활동을 시작한다. 우선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낼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양준일의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 하는데 그걸 글로 표현해서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 다음엔 옛 앨범을 다시 편곡해 재발매할 계획이다. 양준일은 “내 음반이 중고시장에서 고가로 팔린다는데 팬들을 위해 예전 곡들을 엘피(LP)판 등으로 다시 만들어 소장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신곡 활동은 조금 미룰 생각이다. 그는 “지금은 기존 노래를 다시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빛을 보지 못한 자신의 곡들을 제대로 알리는 일이 우선이란 뜻이다.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꽃미모’의 비결은 ‘소식(小食)’이었다. 양준일은 “미국에서 하루 14시간 서빙 일을 했는데, 바쁜 날은 하루에만 16㎞쯤 걷는다”며 “많이 먹으면 졸음이 오는 탓에 계란 몇 개만 틈틈이 먹은 결과 살이 안 찐 거 같다”고 말했다. 탁월한 패션 감각에 대해선 “내 몸에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확신이 있는데, 타고난 거 같다”고도 말했다.
한국 사회의 보수성 때문에 가수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시선에 대해 양준일은 개의치 않는다 했다. 그는 “한국에서 힘들었지만 그런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며 “저를 따뜻하게 챙겨줬던 사람들과 더 좋은 추억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수로 활동하지 않았을 때도 영어를 가르치며 한국에 머물렀을 정도로 한국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국 팬들은 팬미팅 3,600석 전석 매진으로 화답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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