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법원ㆍ교정기관 의견 들어야…사면 철회도 가능
문재인 대통령이 연말연시를 맞아 일반형사범, 양심적 병역거부 사범, 특별배려 수형자, 선거법 사범 등 5,174명에 대한 특별사면(특사)을 단행했어요. 매번 특사 때마다 그러하듯, 이번에도 뒷말이 나왔습니다. ‘노무현의 남자’로 불리는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 정치ㆍ노동계 인사가 사면돼 “사면 기준이 후퇴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죠.
특사는 특정의 범죄인에 대해 형의 집행을 면제하거나 유죄선고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대통령 조치를 말합니다. 특사의 대외적 목적은 ‘국민 대통합’이긴 합니다. 그러나 줄곧 유명 정치인, 공직자, 경제인 등이 포함돼 특혜 논란 등 뒷말이 무성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경제 살리기’를 명분 삼아 재벌 총수를 풀어주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요. 가장 유명한 사례가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실시한 ‘원포인트’ 사면이었죠. 김대중 정부 역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을 특사 명단에 포함해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특사라는 지적이 있었어요.
민심이 좋지 않을 땐 정치범 사면이 빈번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예부터 사면권은 정권 교체 등 큰 정치적 변화가 있을 때 정치범을 구제하기 위해 행해지는 등 정권 유지 수단으로 종종 활용됐어요. 김영삼 정부 때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판결 확정 8개월 만에 풀어줬고, 노무현 정부 때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 등 정치인들을 사면했습니다.
역사상 첫 특사 때는 ‘광복과 건국의 기쁨을 온 국민이 함께 누리자’는 취지로 무분별한 사면이 이뤄줬어요. 바로 이승만 정부가 1948년 9월 27일 실시한 건국 대사면입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살인ㆍ방화ㆍ강도ㆍ성폭행범 등을 제외한 범죄자 6,796명을 모두 풀어줬다고 해요. 전국 교도소가 ‘텅 비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고 하죠? 이 중에는 사형수도 포함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어요.
해외는 어떨까요? 해외에서 대통령 사면으로 논란이 일었던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해외에도 대통령에게 사면 권한이 있기는 하지만, 무분별한 사면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미국은 연방법을 어긴 범죄에 해당할 경우에만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통령 재량권이 폭넓게 인정돼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네이비실 소속 군인을 사면한 것처럼 비판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각 주마다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사면을 받은 범법자를 다시금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독일은 그 어느 국가보다 사면 절차가 복잡합니다. 사면 청원을 받으면 사건 담당 재판부와 수사기관을 통해 대상자에 대해 조사하고, 법원과 교정기관의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습니다. 겨우 사면이 됐더라도, 특정한 의무를 부과해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사면 철회도 가능하다고 해요. 절차가 워낙 엄격해 60년간 사면권을 4번 밖에 행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프랑스도 사면 대상자 조사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친 뒤에야 사면이 이뤄집니다. 테러범죄, 전범 옹호죄, 반인륜 범죄 등 사회적 해악이 큰 범죄는 애당초 사면 대상이 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돼있습니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특사 대상이나 횟수 등에 아무런 제한이 없어 매번 사면 기준과 대상을 두고 논란이 일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20대 국회에서 특사 남용을 방지하자며 사면권 개정안이 발의했지만, 다음 국회로 미뤄지게 됐습니다. 정권마다 반복됐던 특사 논란. 도대체 언제까지 반복될까요?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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