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교민 박춘식씨 “후회 하지 않는다”
식료품을 훔치다 붙잡힌 ‘현대판 장발장’의 실체 의혹(본보 12월 29일)이 불거졌지만 선행을 베풀고 떠난 칠레 교민 박춘식(65)씨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국 방문을 마치고 얼마 전 칠레로 출국한 박씨는 31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및 서면 인터뷰에서 “날 때부터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정해진 게 아니니 환경 탓에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을 무조건 손가락질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그 부자에게도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심정을 전했다.
전직 택시기사 이모(34)씨와 초등학생 아들(12)은 지난 10일 인천 중구의 한 마트에서 1만원 상당의 우유 사과 등을 훔치다 점원에게 적발됐다. 출동한 경찰관은 “아이가 밥을 굶었다”는 이씨의 사정을 듣고 곰탕을 사줬다. 부자가 식사를 하는 동안 현금 20만원을 넣은 봉투를 건넨 이가 박씨다.
그는 “대신 돈을 내면 그걸로 면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부자에게 밥을 사주는 온정 많은 경찰관을 보자 마음이 동해 조금이나마 도와주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 부자가 봉투를 바로 받은 것은 아니었다. 박씨는 “아이가 봉투를 다시 들고 왔는데 ‘너는 아직 모르지만 아버지 갖다 주면 알 거다’면서 돌려보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그는 “나도 아들들이 있어 그 아이 아버지에게 ‘(도둑질 대신) 떳떳이 밥 먹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판 장발장 사건이 알려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도울 방안을 찾으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전국 각지에서 부자를 돕기 위한 온정이 쏟아져 약 2,000만원의 후원금이 모였지만 이씨의 도박ㆍ절도 의심 전력이 불거지며 ‘가짜 장발장’ 논란에 휩싸였다.
박씨도 칠레에서 한국 뉴스를 통해 논란을 알게 됐다. 그는 “부자를 도운 데 후회는 없다”면서 “모든 종교는 과거를 반성할 기회를 주지 않느냐. 주변에서 도와주고 사랑으로 보듬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북 출신 피란민 가정에서 태어난 박씨는 젊은 시절부터 옷 만드는 일을 하다 40년 전 지인 권유로 지구 정반대인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정착했다. ‘봉제 불모지’였던 칠레에서 재봉틀 하나로 시작해 봉직공장에 이어 제지공장, 건축자재 수입 업체 등을 운영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매년 성탄절에는 칠레 빈민 가정들에 재고 의류와 식료품 등도 기부한다.
박씨는 새해에 ‘인생 2막’을 열 계획이다. 그는 “지난해 간암에 걸려 간 절제 수술을 했는데 다행히 얼마 전 완치 판정을 받았다”며 “이제 하던 사업들을 정리하고 칠레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한다”고 했다. 고국을 향해선 “한국 경제가 많이 발전한 만큼 이웃과 온정을 나누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거듭 전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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