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전략경쟁시대 신안보전략의 핵심은 자주국방이어야 한다. 국방력이 약한 나라의 외교는 힘을 받지 못한다. 우리 안보의 중심 바퀴축이 자주국방 역량 강화라면 동맹활용, 다자안보협력, 중견국 외교의 균형적 추구는 바퀴살이 되어야 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우리가 처한 전략 상황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어서 이를 400년 주기의 대변화의 와중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을 정도다. 400년 전에 이 땅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약 400년 전 우리 조상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국토가 유린되는 것을 목도해야만 했다. 당시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국토가 유린되고 발전이 정체되어 망국으로 가는 단초가 되었다.

놀랍게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경쟁은 400년 전의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미국은 본질적으로 해양세력이며, 중국은 대륙세력이다. 미중 간에 양보할 수 없는 정면 승부가 펼쳐지고 있으며, 그 부정적인 효과가 한반도에 드리우고 있다. 사드 배치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른 우리는 이제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파기로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를 우려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미중 전략 경쟁은 한국 안보에 불어닥치는 메가톤급 폭풍이다. 하버드 대학의 앨리슨 교수가 ‘예정된 전쟁’에서 주장하듯이 미중 전략 경쟁은 파괴적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이 험난한 폭풍을 뚫어 나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주국방 외에 방법이 없다. 두 거인이 싸울 때 약소국의 생존 전략은 자주적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고대 펠로폰네소스전쟁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스파르타 중심의 동맹과 아테네 중심의 동맹이 경합했을 때 약한 고리였던 멜로스가 아테네로부터 침략을 당했다. 멜로스는 스파르타와 약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다 중립을 선포했다. 스파르타로부터는 버림받았고 아테네로부터는 잔혹한 답변이 돌아왔다. 약자여서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아픔이 있는 것이라고. 반면 국방력이 강했던 코르키라와 테바이는 동맹의 맹주로부터 존중받았다. 경쟁 진영으로부터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다.

미중 전략경쟁시대 신안보전략의 핵심은 자주국방이어야 한다. 국방력이 약한 나라의 외교는 힘을 받지 못한다. 우리 안보의 중심 바퀴축이 자주국방 역량 강화라면 동맹 활용, 다자 안보협력, 중견국 외교의 균형적 추구는 바퀴 살이 되어야 한다. 자주국방(내부)이 동맹(양자)-다자 안보(지역)-중견국 외교(글로벌)로 연결되면 좋다. 한국형 허브(축)와 스포크(바퀴 살) 전략이라고나 할까. 튼튼한 바퀴 축을 기반으로 바퀴 살이 제대로 펼쳐지면 우리의 의지대로 우리의 안보를 제 궤도에서 굴러가게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자주국방을 강조하여 전력을 증강하면 북한의 불만을 초래하고 판이 깨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실제로 북한은 우리의 전력 증강 프로그램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자주국방 강조와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가 서로 양립 불가한 것만은 아니다. 군사력 현대화 기조는 유지하되 남북한이 지상군 감축을 추진하는 것은 어떤가. 어차피 지상군이 점령해야 전쟁이 종결된다는 점에서 지상군을 줄이는 것은 상대를 점령할 능력과 의지를 접는 것이 된다. 이것은 상호간에 ‘점령’의 공포를 줄이는 방안이다. 갑자기 껴안고 화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공존을 모색할 수는 있다.

기록적인 출산율 저하로 우리의 병역 자원이 줄어들고 있다. 북한은 각종 개발 사업에 지상군을 동원하고 있다. 이참에 서로 지상군 규모를 줄이는 군비 통제 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 핵을 논외로 한다면 북한 지상군의 장사정포 위협은 우리에게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위협이다. 북한으로서도 동북아 최강의 기동전력을 갖고 있는 남한의 지상군이 큰 부담이다. 윈-윈 하는 게임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자주국방으로 인한 군사력 현대화와 남북한 군비 통제를 선순환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한반도가 미중 전략 경쟁의 발화점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남북이 이런 것을 같이 고민해야 한다.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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