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총선이 제2의 촛불혁명, 2020 벚꽃혁명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 혼자’의 시대를 넘어 ‘다 함께’의 새 시대가 여기서부터 활짝 열리길 기대해 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10년은 과학계에서도 분야를 막론하고 엄청난 발견들이 잇따른 시기였다.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를 꼽아보자면 2012년 힉스 입자 발견, 2016년 중력파 검출, 그리고 2019년 블랙홀 그림자 촬영 등이 있다. 이 세 가지 성과들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작업한 결과라는 점이다. 블랙홀의 그림자를 찍기 위해서는 지구 크기의 망원경이 필요했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8개의 전파 망원경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가상 망원경을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는 무려 200명 남짓이다. 중력파를 검출한 연구단 소속 과학자는 1,000명이 넘는다. 지난 2017년에는 두 개의 중성자별이 합쳐지는 과정을 관측하기 위해 전 세계 천문학자의 약 3분의 1이 동참했다. 힉스 입자를 생성하고 관측한 입자가속기와 입자검출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과학 설비이다. 힉스 입자를 발견한 두 연구진의 소속 연구원만 각각 3,000명이 넘는다.

수많은 인력과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되는 이른바 ‘빅 사이언스’는 20세기 이후 과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물론 모든 과학이 빅 사이언스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큰 스케일의 탐구 영역인 우주와 가장 작은 스케일의 탐구 영역인 아원자 미시세계의 경계를 넘어서려면 빅 사이언스가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소규모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이미 지난 세기에 거의 다 끝났기 때문이다.

빅 사이언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작지 않다. 수평적이고 분권적으로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 지성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초연결이 중요한 키워드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 덕목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트렌드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걸어왔다.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혼자 잘하는 ‘슈퍼히어로’ 한두 명을 키우는 데에만 집중했다. 수능 만점자와 세계 1등 기업만 주목과 존경을 독차지한다. 그 때문에 살인적인 경쟁은 불가피하다. 옆에 있는 사람보다 1점이라도 더 받아야,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살아남는다. 탈락자의 삶은 비참하다. 제2, 제3의 김용균이 아직도 살벌한 산업현장을 지키고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은 아들과 함께 마트에서 물건을 훔쳐야 했고 때로는 생활고를 버티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리기도 한다.

빅 사이언스는 묻는다. 그렇게 5,000만 명 중에 골라 낸 한두 명의 ‘슈퍼히어로’와 수천 명의 연구진 중에서 누가 더 창의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결과는 너무 뻔하다. 21세기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길 가망이 없는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확률적으로도 집단 지성이 작동하는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서 뛰어난 천재가 나올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혼자 잘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지금은 다 같이 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대이다. 다 같이 잘하기 위해서는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고 협력하고 때로는 타협하는 조화와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이런 가치를 가르치는 곳이 없다. 고등학교에서든 대학에서든 학생들이 팀 프로젝트를 가장 싫어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시야를 좀 넓혀보면 우리를 둘러싼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도 다 같이 잘사는 조화와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누구를 짓누르고 ‘패싱’하고 적으로 돌리고 하는 행태는 철 지난 냉전의 산물이다. 한미일-북중러의 대립은 20세기 강대국들이 한반도 분단으로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탐욕의 결과였다. 우리는 북한, 중국과도 잘 지내야 하고 지금 불매운동을 하고 있는 일본과도 결국 잘 지내야 한다. 신남방정책으로 인도 및 아세안과 새 관계를 모색하는 일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국제관계에서는 우리 뜻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철학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는 중요하다.

그나마 국내 문제는 우리의 뜻에 따라 움직일 여지가 많다. 넉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은 촛불혁명 이후의 첫 총선이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며칠 전 힘겹게 국회를 통과한 선거법은 다소 미흡하나마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국회에서 담아내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다 함께’의 철학을 가장 앞장서서 구현해야 할 곳이 바로 여의도 아니던가. 지난 16, 7년의 촛불혁명이 행정 권력 심판이었다면 이번 총선은 의회 권력을 심판하는 장이다. 그 와중에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이라는 전대미문의 과제까지 함께 태워졌으니 판돈이 훨씬 커졌다. 앞으로 단지 4년 만을 규정하는 선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촛불혁명 때의 국민적 요구를 법과 제도로 어떻게 안착시킬 것인가라는 시대적 과업을 점검하는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에 따라 어쩌면 대한민국의 2020년대 전체가 바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올해 총선이 제2의 촛불혁명, 2020 벚꽃혁명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 혼자’의 시대를 넘어 ‘다 함께’의 새 시대가 여기서부터 활짝 열리길 기대해 본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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