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 사랑’ 마니아들에 물었더니
“강자에 강한 모습, 어른이 속을 시원하게 뚫어줘”
“못 하겠다는 말 절대 안 해, 도전 정신 깨어났죠”
2019년 기해년(己亥年)은 돼지띠의 해였지만, 정작 온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동물은 따로 있었다. 지난 3월 남극에서 한반도로 헤엄쳐 온 (것이라며 스스로 주장하는) 자이언트 펭귄 ‘펭수’가 그 주인공.
남극 ‘펭’씨에 빼어날 ‘수(秀)’자를 쓰는 그는 어린이의 대통령(‘뽀통령’)으로 알려진 ‘뽀로로’에 이은 2세대 스타 펭귄이다. 뽀로로와 다른 점은 10ㆍ20대는 물론, 30ㆍ40대와 50대까지 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는 것. 자기가 일하는 회사 ‘대빵(사장)’의 이름을 거침 없이 부르는 머리ㆍ몸통ㆍ다리 3등신의 펭귄은, 할말 못하고 사는 직장인 세대의 애환을 위로하며 ‘직통령(직장인의 대통령)’으로 각광받고 있다.
올해 펭수의 인기는 괄목할 만했다. 30일 기준 유튜브 채널(자이언트 펭TV)의 구독자는 156만명이며, 동영상 누적 조회수는 1억2,119만7,695회에 달한다. 지난 7월과 10월엔 ‘동물 최초’로 팬사인회도 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이어리와 의류 등 ‘펭수 굿즈(관련 기획상품)’는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펭수가 압도적인 추천을 받은 시민대표 자격으로 제야의 종을 치게 됐단 뉴스가 놀랍지 않다.
◇권위에 맞서는 당당함이 매력
사람들은 왜 이토록 펭수에 열광할까. 한국일보가 10~50대 ‘펭수 마니아’들을 온라인에 불러모았다. 이들은 “권위에 맞서는 펭수의 당당함이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강사 이유정(52)씨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직진 행보’와 직설적인 표현은 오늘날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원하는 행동들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는 펭수에게 시원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은미(가명ㆍ44ㆍ번역가)씨도 “윗사람 앞에서는 강하고, 약자에겐 한없이 부드러운 ‘강강약약(強強弱弱)’의 면모가 ‘어른이(어른+어린이)’들의 ‘덕력(이끌리는 힘)’을 폭발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래픽디자이너 이고은(36)씨는 “평소 회사에서 할말을 하고 다녔더니 ‘기가 세다’ ‘까칠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펭수를 통해 내가 사는 방식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위로가 됐다”고 전했다.
◇ “무해한 웃음에 힐링 했어요”
자극적이지 않은 ‘건전한 유머’는 큰 강점이다. 올해 수능을 친 고등학생 박현주(19ㆍ가명)양은 “요즘 유튜브 영상을 보면 자극적인 소재로 주목 받으려는 곳이 많은데, 펭수는 ‘무해하게’ 웃기기 때문에 웃으면서도 힐링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생 최윤혁(24)씨는 “약간 건방진 듯한 특유의 말투와 선을 넘을 듯 안 넘을 듯한 태도는 매일 10분씩 그의 영상을 찾게 만드는 요소”라고 말했다.
랩부터 발레, 연기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는 펭수의 활동범위는 사람들의 도전의식을 자극하기도 한다. 박양은 “펭수는 새로운 환경에 부딪혀도 한번도 ‘이거 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데, 그런 점을 보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일단 도전해보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펭수 덕분에 굿즈를 모으는 소소한 취미가 생긴 이들도 있다. 김은미씨는 “공식적으로 출시된 펭수 상품을 모조리 사는 바람에 나잇값 못하는 아줌마란 소리를 듣고 있지만 즐겁다”며 “조카에게 준다는 핑계를 대고 펭수가 그려진 EBS 문제집을 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고은씨도 “평소 굿즈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달력과 다이어리를 샀다”며 “품절된 펭수 잠옷을 구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펭수 열풍은 미래진행형
펭수 열풍은 새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유정씨는 “펭수가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자신의 스타일로 해석하는 한 인기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은미씨는 “올해는 시작이었을 뿐 펭수는 평생 친구”라며 “미국의 ‘미키마우스’나 일본의 ‘키티’가 더 이상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펭수는 표면상 어떤 연기자의 아바타지만, 인형 탈 속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윤혁씨는 “펭수는 펭수라고 믿고 싶을 뿐”이라며 “내년에도 재미있는 영상을 많이 찍어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펭수 자체가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사람들은 펭수의 존재에 감사하며 새해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홍삼이나 영양제 잘 챙기며 건강해야 해. 2020년에도 펭하!(펭수 하이)”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이정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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