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남성이 불법으로 촬영한 사진들을 성인 인터넷 사이트에 마구 뿌리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A씨는 급히 디지털 장의사 업체(인터넷 공간의 이미지나 동영상을 삭제해주는 서비스 업체)를 수소문해 촬영물 확산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한 달 수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요구했고, 그나마 제대로 된 처리결과 보고서도 내놓지 않았다. 가해자를 잡지 못하고, 불법유포물의 피해가 확대될 것이란 공포에 휩싸인 A씨. 그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문을 두드린 곳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이하 센터ㆍ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였다. 센터는 인터넷 포털 등 검색엔진 업체에 일일이 요청해 A씨의 신상정보 연관검색어 노출을 막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해당 지방 경찰청에 문의해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결국 해당 사건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됐으며, 센터가 제공한 유포 피해 사실을 해명할 수 있는 체증 자료, A씨가 받은 의료 지원 기록 등을 근거로 1심과 2심에서 모두 가해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A씨처럼 수백만 원씩 들여 불법 촬영 영상을 지우는 등 고스란히 물적ㆍ심적 손해를 감수해야 했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해 4월 출범한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2년째를 맞아 보고서를 발간했다. 30일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센터에서 도움을 받은 피해자는 총 1,936명으로 이들에 제공된 각종 지원 서비스 건수는 9만6,052건에 달했다. 월 평균 삭제지원 건수를 보면 올해 8,213건으로 2018년(3,610건)보다 2배 이상 증가했고, 수사ㆍ법률 지원 연계 건수도 같은 기간 1.5배 이상(25건에서 44건으로) 늘었다.
그동안 불법 촬영물 유포의 온상으로 지적됐으나 서버가 해외에 있어 제재가 힘들었던 플랫폼들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플랫폼별 삭제 지원 현황을 보면 개인 대 개인 파일 공유(P2P) 사이트를 통해 유포된 피해 촬영물 삭제가 전체의 32.3%(2만9,090건)로, 지난해 7.5%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25%포인트이상 늘었다. 다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한 삭제 지원 비율은 지난해 35.7%에서 올해 4.4%(4,042건)으로 급락해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했다.
센터측은 “피해영상물이 주로 유포되는 토렌트(P2P 공유프로그램의 일종) 사이트에 대한 대응이 크게 개선되면서 P2P사이트 삭제 지원 비율이 급증했다”라며 “SNS 가운데 텀블러가 올해 초부터 자체적으로 불법 촬영물을 거르기 시작하면서 유포 자체는 줄었다”고 밝혔다.
한편 올해 센터가 지원한 피해자 중 여성이 87.6%를 차지해 디지털 성범죄는 여전히 특정 성별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유형은 불법 촬영물 유포(29.7%), 불법 촬영(26%), 유포 불안(12.3%), 유포 협박(8.6%), 사이버괴롭힘(6.5%), 사진합성(4%), 몸캠 및 해킹(1.3%) 순으로 많았다.
앞으로도 센터는 플랫폼과 협력하고 기술 개발을 통해 피해자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지난 5월부터는 트위터 코리아가 센터에 유해 게시물 삭제를 우선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SNS에서 벌어지는 디지털 성범죄 단속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또한 7월부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발한 인공지능(AI)기술을 센터 업무에 시험 적용하면서 그동안 40개 웹하드 사이트에서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모니터링이 24시간 자동으로 가능하게 됐다. 지난달부터는 경찰청과 여가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 촬영물 영상을 통합 관리하고 필터링하는 ‘공공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중이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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